자기 몸을 파괴해서까지 인정을 받고 싶은 거죠

인정을 얻는 방식은 두 갈래로 갈립니다. 한 갈래는 외도입니다. 외도하는 남자는 여러 여자를 만나면서, 여자가 자기에게 넘어오는 것으로 남자로서 인정받는 느낌을 얻습니다. 다른 한 갈래는 자기를 엄청 희생해서까지 남을 도와 인정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겉모습은 정반대인데, 둘 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옵니다.

외도하는 남자가 여러 여자를 만나며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외도라고 하면 먼저 성적인 욕구 쪽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성적인 욕구는 본질적인 부분이 아닙니다. 본질적인 부분은 정서예요. 외로움, 공허감, 인정받음, 이런 정서적인 부분들이 채워지면 남자든 여자든 딴 데 눈 안 팝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외도하는 남자가 여러 여자를 만나면서 얻고 싶은 것은 자기 능력을 인정받는 느낌입니다. 내가 남자로서 매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는 느낌이요. 모르는 여자를 꼬셔서 하룻밤을 자고 나면, 이 남자 마음 안에서는 내가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여자가 넘어왔으니 내가 남자로서 인정받는구나, 하는 거죠. 이 인정받는 느낌을 얻는 데 이용되는 것이 성입니다. 인정받고 싶은 이 마음은 상당히 강합니다.

아버지를 확 비난하던 아들에게 왜 외도가 대물림될까요?

남자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역할을 보고 자랍니다. 아버지가 바람을 폈다, 외도를 했다면, 아들로서 아버지를 확 비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커서 가정을 꾸리고 자기가 아버지 역할을 딱 하게 되는 순간에, 아버지가 했던 그 외도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또 어떤 분은 우리 아빠가 그렇게 바람을 피웠으니 나는 죽어도 안 할 거야, 하고 딱 안 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이분의 아들 대에 가서 바람을 핍니다. 아버지의 외도로 받은 상처가 치유 받아서 바람을 안 피우면 되는데, 이분은 상처는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안 피우겠다고 결단만 한 거예요. 그러면 이분은 안 피워도 이분의 아들이 피우게 됩니다. 치유되지 않은 아픔은 이런 식으로 가족 안에서 대를 이어 내려갑니다.

아내에게 어떠한 잘못이 없는데도 외도를 하는 남편들이 있는 반면에, 아내 때문에 외도할 만한 이유가 충분한데도 외도하지 않는 남편들이 있습니다. 자기 성품과 성깔 때문에 남편을 힘들게 하는 아내들도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남자들이 다 바람피우는 건 아니거든요. 외도는 아내 탓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거죠.

못 도와줘서 미치는 병, 동반의존은 어떤 병일까요?

다른 갈래는 방향이 반대입니다. 동반의존이라는 병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동반의존은 누구를 도와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병이에요. 못 도와줘서 미치는 병입니다. 남을 못 도와주면 견디지를 못해요. 그래서 자기를 엄청 희생해서까지 다른 사람을 돕는 데 몰입을 하고, 그다음에 자기는 남는 게 없죠. 자기를 그렇게까지 희생시키니, 기본적으로 동반의존은 자기 학대적 병입니다.

목회자도 본인도 모르는 이 병은 교회에서 어떻게 보일까요?

자기 학대적인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기가 막히게 사용해먹을 수 있겠죠. 겉으로는 막 신앙이 좋은 것 같고 희생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실상은 병이라는 거예요. 누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목회자도, 그 일을 하는 본인도 이게 병인 줄 모릅니다. 목회자는 시켜 먹고, 본인은 시키는 일을 합니다.

인정 중독자들은 왜 자기 몸을 파괴해서까지 희생할까요?

그러면 왜 그렇게 희생할까요. 인정받으려고요. 그래서 동반의존인 사람들을 다른 말로 인정 중독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인정에 중독됐으니까 자기 몸을 파괴해서까지도 인정을 받고 싶은 거죠.

인정이 왜 이렇게 중요할까요. 자기가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적 가치성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냥 있는 것만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다고 자기를 정해 놓은 거예요. 그러면 남는 길은 행위밖에 없어요. 그래서 희생하고 돕는 행위를 통해서, 자기 존재도 괜찮다, 가치 있는 사람이다, 하는 것을 얻고 싶어 하는 거죠.

그런 희생과 헌신을 하지 않고 있으면, 내가 여기 있어도 된다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존재적 허락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심적으로 굉장히 힘들고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내가 뭘 할 수 있지, 하면서 뭔가 할 일을 쫓아서 찾아다니게 됩니다.

중독자와 그 아내는 어째서 환상의 콤비가 될까요?

대개 술이나 약물 같은 것에 중독된 남편과 사는 아내들을 동반의존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둘이 너무 환상의 콤비거든요. 중독자는 계속 자기를 돌봐 달라는 삶으로 살고, 동반의존인 아내는 그래 내가 너를 돌봐 주마 하고 계속 삽니다. 돌봐 달라는 사람과 돌봐 주고 싶은 사람이 만났으니 서로 딱 맞는 거죠.

중독자가 회복하려 할 때, 동반의존인 아내는 무엇을 할까요?

그런데 중독자가 이 관계를 깨뜨리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이제 어른으로서 내 삶을 책임지며 살아갈 거야, 하고 회복의 길로 갑니다. 그러면 동반의존인 아내는 어떻게 되겠어요. 겁나죠. 내가 도와줘야 될 대상이 사라지네, 하고요.

그래서 이 중독자가 회복되려고 할 때 뒤통수를 한 대 칩니다. 다시 넘어지게요. 상대가 중독자로 남아 있어야 자기가 도울 수 있으니까요. 이래서 결국은 회복을 못 하게 만들어요. 회복을 도와주는 것 같지만, 실상 보면 그 회복을 망가뜨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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