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과 잘 곳이 있고 맡은 일을 해내는데도 자신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필요한 것을 갖추고 사는 것과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주고 이해해 주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은 욕구를 표현했을 때 누군가 알아차리고 적절히 반응해 주는 경험을 하면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에게는 음식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사람에게는 음식만이 아니라, 울음이나 표정, ‘힘들다’는 말처럼 자기가 보내는 신호에 반응해 주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아이에게는 특히 그렇습니다. 배고픔을 채우는 음식과 함께 안아주는 몸, 눈을 맞추는 얼굴, 울음에 반응하는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돌봄은 영양 공급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시설에서 자란 아기들은 먹을 것을 받고도 왜 말라 갔을까요?
르네 스피츠라는 의사는 병원과 보육 시설을 돌아다니며 아기들을 살폈습니다. 그중 부모 품을 떠나 시설에서 오래 자란 아기들은 먹을 것을 제때 받았는데도 발달이 늦어지고, 움츠러들어 감정 표현이 줄었으며, 병에 걸리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습니다. 시설에서 자란 아기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에 이를 시설병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아기들이 자란 시설에는 먹을 것은 있었지만 아기를 만져 주고 예뻐해 줄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설에 따라 차이가 있었습니다. 한 시설 아기들은 모두 말라 갔는데 다른 시설 아기들은 통통하게 자랐습니다. 왜 그런지 조사해 보니, 말라 간 곳에서는 젖병만 놓아두고 아기들이 혼자 먹게 했고 통통하게 자란 곳에서는 간호사가 아기를 안고 먹였습니다.
다만 이 비교만 보고 ‘안아주지 않아 죽었다’고 말하면 연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게 됩니다. 아기들이 말라 간 데에는 안아 주지 않은 것 말고도 감염, 돌볼 인력의 부족, 아기가 보고 들을 거리도 누군가와 주고받는 반응도 거의 없었던 환경 등 여러 조건이 함께 작용했습니다. 그래도 영양만 충분하면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란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연구는 돌봐 주는 사람과 주고받는 관계를 빼앗긴 아기는 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습니다.
아이는 돌보는 사람의 반응에서 몸으로 무엇을 배울까요?
아이가 울었을 때 누군가 안아주고, 아이의 표정을 따라 웃어 주고, 불편한 것을 덜어 주면, 아이는 자기가 울거나 웃으면 누군가 알아듣고 반응해 준다는 것을 배웁니다. 배고픔이나 불편함 같은 몸의 느낌에 이렇게 반응이 돌아오는 일이 되풀이되면, 아이는 몸으로 ‘나는 돌봄받는 존재구나’ 하고 느끼게 되고 마음도 안정됩니다.
반응이 지나치게 적거나, 어떤 때는 달래 주고 어떤 때는 그냥 두는 식으로 매번 달라지면, 아이는 신호를 보내도 누군가 받아 줄 거라고 믿기 어렵습니다. 반응이 너무 적으면 울어도 소용없다고 포기할 수 있고 매번 달라지면 더 강하게 울어야만 반응을 얻는 방식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감정을 받아 주는 관계가 없으면 어른의 마음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요?
어른은 돌봄이 부족해도 시설의 아기들처럼 몸이 말라 가거나 목숨을 잃지는 않습니다. 대신 슬픔과 두려움을 말할 사람이 없고, 성취할 때만 인정받는 관계가 반복되면, 점점 감정 자체를 덜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일은 하지만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공허가 남습니다.
이런 상태를 두고 몸은 멀쩡히 살아 있는데 마음은 ‘안에서 죽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비유로만 표현하면 구체적인 문제를 놓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우울, 소진(지칠 대로 지쳐 바닥난 상태), 큰 충격을 겪은 뒤에 남는 외상 반응,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는 고립이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 섞여 있는지 알려면 이런 상태가 얼마나 오래 이어졌는지, 잠과 식사, 일 같은 일상생활을 얼마나 해내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강한 자극은 공허를 채워 줄 수 있을까요?
공허할 때 과소비, 과음, 위험한 관계, 끊임없는 영상 시청처럼 강한 자극을 찾으면 잠시 살아 있는 느낌이 생깁니다. 그러나 자극이 끝나면 원래의 공허가 더 선명해집니다. 더 센 자극보다 내가 힘들다거나 지쳤다는 신호를 보낼 때 곁의 사람이, 그리고 나 자신이 거기에 맞게 반응해 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힘들다고 말했을 때 해결책부터 주지 않고 먼저 들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도움이 됩니다. 나 스스로도 피곤함을 알아차리고 나를 쉬게 해 주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슬프다’, ‘두렵다’처럼 구체적인 말로 표현해 보는 연습도 좋습니다. 감정을 말로 꺼내야 곁의 사람도, 나 자신도 그 감정을 알아차리고 반응할 수 있습니다. 공허한 느낌이 오래 이어지고 잠, 식사, 일 같은 일상생활까지 힘들어지면, 심리치료를 받거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태를 확인해 보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메마른 마음은 어떻게 회복될까요?
누군가 한 번 크게 위로해주는 것보다 작은 반응이 꾸준히 이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곁의 사람이 내 안부를 묻고 대답을 기다려 주는 일, 약속한 시간에 나와 주는 일, 내가 불편하다고 말했을 때 행동을 바꿔 주는 일이 쌓이면서 ‘이 사람 곁은 안전하다’는 느낌이 생깁니다.
나 자신에게도 이런 작은 반응을 꾸준히 해 주어야 합니다. 배고픔과 피로를 무시하지 않고, 불편한 관계에서 ‘여기까지는 힘들다’고 한계를 말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그 마음을 모른 척하지 않고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을 다 갖추었다고 해서 내가 돌봄받는 존재라는 느낌, 살아 있다는 느낌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이런 느낌은 내 신호에 누군가 반응해 주고 나도 나 자신에게 반응해 줄 때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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