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매일 찾아가 돌보고 비용까지 혼자 부담하면서도 힘들다는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성실하게 책임을 다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 가족이 차라리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올라옵니다.
할 수 있는 범위를 넘겨 돌보면 왜 원망이 쌓일까요?
할 수 없는 몫까지 맡으면 몸이 지치고, ‘언제까지 이 돈을 들여야 하나, 언제까지 매일 가서 시중을 들어야 하나’ 하는 원망이 쌓입니다. 그 원망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면 결국 내가 돌보는 가족 자체가 미워집니다. 그러니 그 가족이 차라리 세상을 떠났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고 해서 곧 내가 악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쉬고 싶고 도움받고 싶은 내 마음을 계속 모른 척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떠맡은 돌봄은 무엇이 문제일까요?
부탁을 거절하면 나쁜 며느리나 불효한 자식이 될 것 같아 스스로 일을 떠맡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내가 이렇게까지 했으니 알아줘야 한다’는 기대가 생깁니다. 가족들이 그만큼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으면, 내가 스스로 한 일인데도 억지로 떠밀려 희생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족을 배려하고 돌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싫다고 말할 수 없어서 하는 돌봄입니다. 싫다고 말하지 못하니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하게 되고, 그러다 지쳐서 오래 이어 가기 어렵습니다. 또 거절할 수 없으니, 내가 가족을 사랑해서 이 일을 하는지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하는지 스스로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가족의 비난을 피하려고 무리해서 모든 일을 맡으면 관계가 나아질까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고 말하면 가족이 서운해하거나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 불편을 피하려고 다시 모든 일을 맡으면 당장은 다툼이 줄어듭니다. 대신 몸은 지치고 내가 돌보는 가족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고 선을 긋는 목적은 아무도 서운하지 않게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돌봄을 지속할 수 있도록 시간과 비용, 체력의 한도를 정하는 데 있습니다. 혼자 다 떠맡던 내가 무너지면 돌봄도 함께 중단됩니다.
돌봄을 끝까지 혼자 책임지려는 마음과 도박에 빠지는 마음은 어디가 닮았을까요?
‘내가 끝까지 책임지면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헌신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밑에는 내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혀 다른 이야기 같지만, 도박에 빠진 사람도 ‘이번 한 번이면 모든 빚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 손실을 더 키웁니다. 돌봄에서는 지쳐서 내가 돌보는 가족이 미워지고, 도박에서는 빚이 불어납니다. 결과는 다르지만, 내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은 닮아 있습니다.
다만 도박에 빠지는 것을 그 사람의 성격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중독에는 쾌감을 좇게 만드는 뇌의 작용, 충동을 누르기 어려운 문제, 스트레스, 돈에 쫓기는 절박함이 함께 얽혀 있습니다. 도박에 빠진 사람에게는 전문적인 치료와, 돈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막아 두는 조치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미움을 줄이려면 마음을 고쳐야 할까요, 맡은 몫을 나눠야 할까요?
내가 돌보는 가족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더 잘해 주는 것은 해결이 아닙니다. 미운 마음을 고치려 애쓰기보다 내가 맡은 몫을 다시 나눠야 합니다. 일주일에 가능한 방문 횟수, 부담할 수 있는 비용, 다른 가족이 맡을 일, 요양 시설이나 돌봄 서비스 같은 기관에 맡길 일을 구체적으로 적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는 못 하겠다’는 폭발이 나오기 전에 가족들에게 ‘나는 여기까지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나머지는 다른 가족이나 기관에 맡기면, 비난은 들을 수 있어도 내가 돌보는 가족이 차라리 세상을 떠났으면 하는 마음은 줄어듭니다. 필요한 것은 더 착해지는 일이 아니라 오래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지키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