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 속에서는 강하지만 현실에서는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

책상에 앉았지만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성공한 내 모습을 그리거나 누군가를 이기는 장면을 떠올리며 몇 시간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공상 속에서는 능력도 인정도 이미 얻었습니다. 그러니 현실에서 서툴게 첫발을 뗄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해야 할 일 앞에서 빠지는 공상은 게으름일까요, 실패와 무력감을 잠시 피하는 것일까요?

이런 공상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막상 시작했다가 실패하면 내 부족함이 드러날까 봐 두렵습니다. 해 봐도 무엇 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을 것 같은 무력감도 듭니다. 공상은 이 두려움과 무력감을 잠시 덮어 주는 피난처가 됩니다.

현실에서 힘이 없었던 아이에게 공상은 어떤 곳일까요?

이런 공상은 어린 시절과 이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의견을 말할 때마다 무시당하거나 혼난 아이는 현실에서 자기 말로 무엇 하나 바꿔 보기 어렵습니다. 이런 아이는 저마다 다르게 반응합니다. 부모가 원하는 대로 맞추며 살아가는 아이도 있고, 반항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자체를 줄이고 자기 안으로 물러나는 아이도 있습니다. 이렇게 물러난 아이가 공상에 빠지기 쉽습니다.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으니, 머물 곳이 자기 머릿속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에게 공상은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현실에서는 부모의 표정 하나도 바꾸지 못하지만, 머릿속에서는 누구보다 강하고 모든 사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받지 못한 위로도 공상 속에서 받습니다. 공상은 이렇게 상처받은 자존감을 보호하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무언가를 해내는 힘을 키워주지는 못합니다.

왜 상상에서 얻은 만족이 클수록 작은 행동은 초라하게 느껴질까요?

공상 속에서는 책을 쓰고 사업에 성공하는 일이 한순간에 완성됩니다. 현실에서는 첫 문장을 고치고, 서툰 결과를 내놓고, 거절을 견뎌야 합니다. 두 경험의 차이가 클수록 실제 행동은 느리고 보잘것없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다시 공상으로 돌아가고, 행동하지 못한 자신을 비난한 뒤 또 강한 자신을 상상합니다. 위로를 얻으려고 시작한 공상 때문에, 도리어 해야 할 일은 피하고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것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공상을 없애려 하기보다 무엇을 살펴봐야 할까요?

공상은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를 대신 채워 주고 있을 수 있습니다. 공상 속에서 늘 칭찬받는다면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감정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상대를 굴복시키는 장면이 반복된다면, 실제 관계에서 화가 나도 말하지 못했거나 ‘더는 안 된다’고 선을 긋지 못한 일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공상 속에서처럼 현실에서도 상대를 굴복시키라는 말은 아닙니다. 찾아야 할 것은 공상이 대신 채워 주던 것, 곧 실제 삶에서 내게 필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두를 지배하는 장면을 자주 떠올린다면, 실제 삶에서는 ‘내 의견을 한 번도 말하지 못해 답답하다’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을 지배하는 일이 아니라 내 의견을 말하는 일입니다.

공상에서 빠져나오려면 큰 목표를 세워야 할까요, 작은 행동 하나를 끝내야 할까요?

공상에서 빠져나오려면 큰 목표를 세우기보다 십 분 안에 끝낼 행동을 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문서 제목을 쓰고, 빨래를 돌리고, 한 통의 연락을 보내는 식입니다. 몸을 움직여 결과를 남기면, 공상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내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이 생깁니다.

상상력은 창조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과 일, 관계를 반복해서 놓칠 만큼 공상에서 나오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불안이나 우울, 집중이 잘 되지 않는 주의력 문제가 함께 있는지 전문가와 상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상 속에서 왕이 되는 시간보다 현실에서 작은 일 하나를 끝내는 시간이 삶을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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