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면 상대에게 화를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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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다시 말해달라’고 묻는 대신 목소리가 커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르는 것 자체보다 모르는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져 부끄러운 것이 문제입니다. 이 부끄러움을 피하려고 답답한 마음을 상대 탓으로 돌립니다.

이해되지 않는 말에 화가 나는 건 정말 상대가 설명을 못해서일까요?

‘네가 설명을 못해서 그래’라는 말이 사실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가 설명을 바꾸어 다시 해 주어도 계속 화가 나고 상대가 내게 맞춰 줄 때까지 몰아붙인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때는 상대의 설명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내 뜻대로 움직여 주어야 한다는 내 마음이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 마음도, 모르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도 아기 때의 마음이 남아 있는 데서 나옵니다.

아기 때 ‘내가 원하면 세상이 움직인다’고 느끼던 마음은 자라면서 어떻게 될까요?

배고픈 아기가 울자 돌보는 사람이 젖을 줍니다. 그런데 아기는 아직 자기와 바깥을 구분하지 못해서 바깥의 누군가가 젖을 주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울었더니 젖이 나타났으니, 그 젖을 자기가 만들어 냈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내가 원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 나는 뭐든 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을 전능감이라고 합니다. 아기 때에는 이런 전능감이 자연스럽습니다.

성장하면서 아이는 원하는 것이 바로 생기지 않고 타인에게는 다른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이렇게 기다리고 좌절하는 일을 견디면서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전능감은 ‘이만큼은 내가 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자신감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이 전능감이 바뀌지 않고 아기 때 그대로 남아 있으면 어른이 되어서도 아기 같은 행동이 나옵니다.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보고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고 자기에게 맞춰 주기를 바랍니다. 대화하다가 상대가 맞춰 줄 때까지 몰아붙이는 것도 이 마음에서 나옵니다.

‘다 알아야 한다’는 마음은 어디서 오고, 배우려는 마음과 어떻게 다를까요?

흔히 ‘전지전능’이라는 말을 씁니다. 뭐든 다 알고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처럼, 아기 때의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전능감에는 ‘나는 다 알아야 한다’는 마음도 함께 붙어 있습니다. 사람은 다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그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견디지 못한다면, 아기 때의 이 마음을 아직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배우려는 사람은 모르는 것을 질문합니다. 반면 다 알아야 안심하는 사람은 질문하기보다 빨리 결론을 내립니다. 질문을 하려면 먼저 ‘나는 이것을 모른다’고 인정해야 하는데 이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렵습니다. 모르는 것이 남아 있으면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결론을 내리는 이런 모습은 상대의 감정을 대할 때도 나타납니다. 사람의 감정과 관계에는 한 번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상대가 자기 감정이 왜 생겼는지 설명하지 못해도 그 감정은 실제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의 감정을 거짓이라고 결론 내려 버리면 대화는 거기서 끊깁니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면, 답답함과 좌절은 어디로 향할까요?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우면 상대가 일부러 어렵게 말하거나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은 자기가 못 알아들은 것인데,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니 상대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지 못해 상대에게 옮겨 놓고 마치 상대의 잘못인 것처럼 보는 것을 투사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모르는 데서 생긴 답답함과 좌절은 화가 되어 상대에게 향합니다. 상대를 비난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설명을 바꾸어 다시 해 주는데도 ‘네가 설명을 못해서 그래’라는 말이 계속 나온다면, 이런 투사가 일어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비난을 멈추려면 내가 무엇을 알아들었고 무엇을 모르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라고 말하고 내가 이해한 내용을 되짚어 봅니다. 그래도 모르는 부분이 남으면 모르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질문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확인하는 행동입니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견디는 힘은 어떻게 생길까요?

다음에 상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 열이 오를 때, 바로 목소리를 높이거나 상대를 탓하지 말고 ‘지금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운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는 답이 나오면 지금 오르는 열은 상대 때문이라기보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내 마음에서 나오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는 ‘아, 내가 지금 뭔가 모르고 있구나’ 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말을 멈추는 것도 필요합니다. 가라앉은 뒤에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라고 물으면 됩니다.

모른다고 말해도 관계와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는 경험이 쌓여야 ‘다 알아야 한다’는 아기 때의 마음이 줄어듭니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존중할 수 있고 오늘 답을 얻지 못해도 견딜 수 있을 때, 대화는 끊기지 않고 이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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