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올라오는 즉시 나쁜 마음이라고 눌러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화를 누르다 보면 해야 할 말도 못 하게 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의욕까지 함께 사라질 수 있습니다. 화를 내는 힘과 거절하고 선택하고 경쟁하고 무언가를 시작할 때 쓰는 힘이 같은 힘이기 때문입니다.
화를 내는 힘인 공격성은 남을 해치기만 할까요?
화를 내는 이 힘을 정신분석에서는 공격성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공격성은 폭력과 같은 뜻으로만 쓰이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을 향해 움직이고 방해물을 밀어내고 자신을 보호하는 생명력까지 포함합니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위니캇도 이 힘을 나쁘게 보지 않고 삶을 움직이는 에너지로 보았습니다. ‘내가 해낼 거야’, ‘난 이렇게 살 거야’ 하는 마음도 이 힘에서 나옵니다. 물론 이 힘은 남을 해치는 데 쓰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격성을 없애는 일보다 이 힘을 쓰되 그 힘으로 한 행동이 남에게 끼친 결과까지 책임지는 일이 중요합니다.
공격성이라는 힘을 쓰려면 왜 먼저 안전하게 쉬어야 할까요?
지친 사람이 상담실에서 잠들거나 한동안 말없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말하기 싫어서 버티는 침묵이나, 말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침묵이라면 따로 살펴야 합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상담자는 깨우지도, 침묵을 깨뜨리지도 않고 그대로 둡니다. 그 사람은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평가받지 않아도 상담자와의 관계가 끊기지 않는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곳에서 편안하게 잠드는 모습은 아기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엄마 품에 안겨 잠드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위니캇은 무엇을 해내는 경험보다 이렇게 그냥 있어도 되는 경험이 먼저라고 보았습니다. 이 경험이 바탕에 깔려야 그 위에서 앞에서 말한 공격성, 곧 무언가를 해내는 힘을 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경험이 자꾸 깨지고 흐트러지면 온전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기 힘들어집니다.
쉬는 동안 몸의 긴장이 풀리고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 다시 알아차리게 됩니다. 충분히 쉬지 못한 사람에게 계속 움직이라고 재촉하면, 움직이더라도 그것은 자기 안에서 스스로 나오는 힘이 아니라 남의 요구에 맞추는 또 하나의 의무가 됩니다.
내 분노를 인정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일까요?
화를 내면 관계가 깨진다고 배운 사람은 자신이 화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상대의 표정과 말투에서 적의를 빠르게 찾고 먼저 방어하거나 물러납니다. 내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은 화, 곧 내 안의 공격성은 없어지지 않고 이렇게 바깥 사람들의 적의처럼 보이게 됩니다. 위니캇도 자기 안의 잔인함과 파괴성과 공격성을 마주하지 않으면, 바깥이 온통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습니다.
‘나도 화가 났다’고 인정한다고 상대의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정하고 나면 상대에게 있다고 느꼈던 적의가 줄어들고 상대가 실제로 얼마나 위협적인지와 내 화가 얼마나 큰지를 따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의 표정만 보고 먼저 방어하거나 물러나는 대신 실제 상황에 맞게 ‘싫다’고 거절하거나 거리를 두는 것으로 화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화를 표현한다고 해서 모욕하거나 폭력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분노와 사랑을 함께 느끼면 관계에서 무엇이 달라질까요?
가까운 사람에게 화가 나도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길 수 있습니다. 두 감정을 함께 견디면 ‘당신이 밉다’고 존재 전체를 공격하는 대신 ‘그 행동은 멈춰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화를 낸 뒤에도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남아 있으면 미안함이 생깁니다. 그 미안함이 있으면 잘못한 행동을 고치고 관계를 회복할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처럼 ‘나도 화가 났다’고 인정하며 내 안의 공격성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 공격성과 사랑이 따로 떨어지지 않고 한 사람 안에 함께 있게 됩니다. 이것을 공격성의 통합이라고 합니다. 사랑과 떨어져 있는 공격성은 부수는 쪽으로만 가기 쉬워서 나쁘게만 보입니다. 사랑과 함께 있을 때 이 힘은 부수는 쪽이 아니라 만드는 쪽으로 갑니다. 그렇다고 통합이 파괴하고 싶은 충동을 미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힘을 부수는 데 쓰지 않고, 나를 지키는 선을 긋고, 새로운 것을 만들고, 망가진 관계를 고치는 데 쓰도록 책임지는 것입니다.
분노가 올라올 때, 행동하기 전에 그 분노가 무엇을 지키려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짜증이 치밀 때 곧바로 터뜨리거나 억누르기 전에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턱이 굳고 목소리가 커지는 순간 ‘나는 무엇을 침해받았고,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묻는 것입니다. 그때 침해받았다고 느낀 것이 바로 화가 지키려는 것입니다.
화가 났다고 무엇이든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폭력과 위협은 멈춰야 하며 스스로 통제하기 어렵다면 그 상황에서 벗어나 상담자 같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화는 나에게 ‘여기부터는 안 된다’는 선을 알려 줍니다. 그 선을 알아차리면 죽이듯 눌러왔던 힘을 자신을 지키고 삶을 움직이는 힘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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