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스러운 아이는 자기 마음보다 부모의 표정을 먼저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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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쓰지 않고, 필요한 것을 말하지 않고, 어른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아이는 칭찬받기 쉽습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똑같이 조용해 보여도 원래 성격이 차분한 아이가 있고, 요구하면 혼나거나 부모가 힘들어질까 봐 참고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손이 가지 않는 아이는 마음도 편안할까요?

참고 있는 아이는 자기 욕구를 알아차리기 전에 부모의 표정을 먼저 읽습니다. 배가 고파도 바쁜 부모에게 말하지 않고 속상해도 분위기를 망칠까 봐 웃습니다. 이 아이의 어른스러움은 성숙해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혼나지 않으려고 부모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자기를 부모에게 맞춰 온 것입니다.

아이는 감정이 흔들려도 다시 안정되는 법을 어떻게 배울까요?

아이가 참지 않고 자기 마음을 드러내려면 그 마음을 받아 주는 어른이 있어야 합니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위니캇은 어른이 이렇게 받아 주는 것을 ‘안아주기’라고 불렀습니다. 품에 안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아이의 감정을 견디며 마음으로 받아 주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아이가 울면 이유를 찾아 주고, 놀라면 진정시켜 주고, 무언가를 원한다고 말해도 짜증 내거나 야단치지 않고 곁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이런 반응이 되풀이되면 아이는 속상하거나 놀라는 일이 생겨도 다시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안아주기는 아이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감정을 드러내고 다시 안정될 때까지 한결같이 곁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부모를 달래야 했던 아이는 왜 자기 감정부터 숨길까요?

반대로 부모가 자주 폭발하거나 우울해서 아이가 부모의 기분을 살피고 달래야 하는 집이 있습니다. 이런 집의 아이는 울음과 분노를 억누릅니다. 부모가 편안해야 아이도 마음을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키지 않아도 집안일을 하고 동생을 돌보며 문제를 만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이가 오히려 부모를 돌보게 됩니다. 아이가 부모 노릇을 한다는 뜻에서 이것을 부모화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책임감이 빨리 자란 것처럼 보이지만 그 대신 아이는 도와 달라고 하고 기댈 기회, 실수해 보며 배울 기회를 잃을 수 있습니다. 또 어릴 때부터 자기 욕구보다 부모의 표정을 먼저 읽어 왔기 때문에 어른이 된 뒤에도 남의 필요는 빨리 알아차리면서 자기 피로는 늦게 알아차립니다.

참아서 칭찬받은 아이는 왜 마음이 아픈 이유를 본인도 모를까요?

‘너는 손이 안 가서 좋다’, ‘동생보다 어른스럽다’는 말은 아이에게 중요한 보상이 됩니다. 아이는 사랑받으려고 더 참으며 힘들다고 말하는 순간 부모를 실망시킬 것처럼 느낍니다.

떼를 쓰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는 어른을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한 번은 들여다보고 아이는 도움을 받을 기회라도 얻습니다. 그런데 조용히 참는 아이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고 오히려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니 이 아이가 참고 있는 고통은 주변 사람에게 오래 가려질 수 있습니다. 아이 자신도 자기가 아프다는 것을 알 기회가 없습니다. 칭찬이 그 아픔을 덮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칭찬을 받았다고 해서 마음 놓고 자랐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른스럽다는 칭찬을 듣고 자랐다면, 그 칭찬을 받으려고 무엇을 참아야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을 돌보기 전에 나에게 먼저 묻는 연습은 어떻게 할까요?

어른스러운 아이였던 사람은 부탁을 받으면 가능한지 생각하기 전에 수락합니다. 이제는 대답하기 전에 잠깐 멈추고 내가 피곤한지, 시간이 있는지, 정말 원하는지를 나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아이도 남보다 자기 마음을 먼저 살피고 말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착하다’는 칭찬만 하기보다 ‘힘들면 말해도 된다’, ‘지금은 네가 도움받을 차례다’라고 알려 주는 것입니다. 아이는 어른의 걱정을 대신 책임지면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을 표현해도 어른이 감당해 주는 경험 속에서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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