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업무 절차를 알려줬을 뿐인데 ‘네가 뭔데 나를 시켜’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지시가 합리적인지 검토하기 전에 몸이 긴장하고 목소리가 굳습니다. 지금 상사가 한 말이 예전에 아버지나 다른 윗사람에게 무시당했던 경험을 건드린 것일 수 있습니다.
화가 나는 건 지시의 내용 때문일까요, 지시받는 입장 때문일까요?
상사의 지시에 이렇게 반응할 때, 화를 부르는 것은 지시의 내용보다 누군가에게 지시받는 입장에 선다는 사실 자체일 수 있습니다. 지시받는 입장이 되는 것만으로 예전에 무시당했던 경험이 건드려져 모욕감과 분노가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지시를 그냥 따라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지금 화가 나는 것이 지시가 정말 부당해서인지, 아니면 지시받는 입장 자체를 견디기 어려워서인지는 따로 따져 봐야 합니다. 부당한 지시에 나는 화와 지시받는 입장에서 올라오는 화를 한데 섞으면 정당한 문제 제기도 감정적인 충돌로 끝날 수 있습니다.
두세 살 아이는 왜 ‘싫어’라는 말을 자주 할까요?
지시받는 입장이 왜 이렇게 견디기 어려운지 알려면 아이가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와 ‘나’가 되어 가는 과정부터 보아야 합니다. 두세 살 무렵 아이는 ‘싫어’, ‘내가 할래’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단순히 버릇이 나빠져서가 아닙니다. 아기는 처음에 엄마와 한 몸처럼 붙어 지내다가, 차츰 떨어져 나오면서 반항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자기 뜻을 처음 말로 드러낼 때도 ‘싫어’, ‘안 돼’ 같은 말부터 나옵니다. 엄마 뜻에 ‘싫어’라고 말하면서 아이는 엄마가 원하는 것과 자기가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드러내 봅니다. 아동 정신분석가 마가렛 말러는 이렇게 아이가 엄마에게서 조금씩 떨어져 나와 ‘엄마는 엄마, 나는 나’가 되어 가는 과정을 ‘분리개별화’라고 불렀습니다.
이때 부모가 위험한 일은 분명하게 막으면서도 아이가 부모와 다른 것을 원하는 마음은 인정해 주면, 아이는 부모 말을 따른다고 해서 자기 생각까지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배웁니다. 반대로 부모가 무조건 따르라고만 하거나 아이가 반항할 때마다 모욕을 주면, 아이에게는 윗사람 말을 따르는 일이 곧 자기 생각을 버리는 일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는 부모 말이 옳아도 왜 반대할까요?
청소년은 부모의 말이 옳아도 일부러 반대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생각을 그대로 따르면 자기 생각이 없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가 피터 블로스는 청소년기를 ‘두 번째 개별화’라고 불렀습니다. 두세 살 때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오며 한 번 겪은 일을, 사춘기에 부모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기 판단을 만들며 한 번 더 겪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반항을 거치며 ‘나에게도 내 생각이 있다’는 것이 자리 잡으면, 사람은 어른이 됩니다. 어른은 권위를 가진 사람이 지시하면 속으로는 모욕적으로 느껴져도 그 지시를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춘기의 반항이 끝나지 않고 마음에 남아 있으면, 윗사람의 지시를 따르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합니다. 지시의 내용을 따지기도 전에 ‘네가 뭔데 나를 시켜’ 하는 생각부터 올라옵니다.
상사에게 아버지가 겹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아버지가 질문을 허용하지 않고 모욕하며 명령했다면, 어른이 된 뒤 상사의 평범한 지시도 어릴 적 아버지의 명령처럼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이 아버지가 아닌데도, 몸은 아버지 앞에서 자신을 지키려 하던 때처럼 긴장하고 굳습니다. 상사를 보며 화를 내지만 실제로는 아버지 앞에서 말하지 못했던 분노까지 함께 올라옵니다.
이를 전이라고 합니다. 예전 관계에서 생긴 감정이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아버지 앞에서 느꼈던 위협과 분노를 지금 상사 앞에서 느끼는 것이 그렇습니다. 전이를 알아차린다고 해서 상사가 실제로 잘못한 부분까지 없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전이를 알아차려서 할 수 있는 것은 상사가 지금 한 행동과 내 안에서 올라온 예전의 반응을 나누어 보는 것까지입니다.
지시가 모욕적으로 느껴질 때, 성숙한 사람은 어떻게 대응할까요?
성숙한 대응은 무조건 따르는 것도, 무조건 맞서는 것도 아닙니다. 지시의 내용이 옳은지 따지는 일과 옳지 않을 때 어떤 절차로 말할지를 나누어 생각하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지시라면 기분이 상하더라도 업무에 필요한 일이니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지시가 부당하다면 ‘기분 나쁘다’에서 멈추지 말고 규정과 근거, 예상되는 피해를 정리해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권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윗사람이 언제나 옳다고 믿는 일이 아닙니다. 어떤 일을 결정할 권한이 상사에게 있다면 그 권한은 인정하되, 결정이 잘못되었을 때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이의를 제기할 때도 사람을 비난하거나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규정과 제도 안에서 문제를 바로잡으려 합니다.
분노가 올라오는 순간, 지금의 상사와 과거의 아버지를 어떻게 나눠 볼 수 있을까요?
지시를 받자마자 반발하고 싶다면 바로 말하기 전에 세 가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상사에게 그 일을 시킬 업무상 권한이 있는지, 내가 어느 대목에서 모욕을 느꼈는지입니다. 이렇게 나누어 보면 상사가 실제로 한 일과 내가 모욕으로 받아들인 부분을 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 같은 말을 동료가 했다면 반응이 달랐을지도 생각해봅니다. 달랐을 것 같다면 화는 말의 내용보다 윗사람에게 지시받는다는 사실에서 올라온 것일 수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말하지 못했던 분노를 오늘의 상사에게 쏟으면, 지금 눈앞의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잃습니다. 반대로 ‘화가 나는 건 내 옛 상처 때문’이라며 부당한 지시까지 참아서도 안 됩니다. 어른이 윗사람을 대한다는 것은 지금 벌어진 사실을 기준으로 따를 것과 거부할 것을 가려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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