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어릴 때 겪은 일을 이야기하면서, 지금도 몸에 멍이 들면 좋다고 말한 분이 있었어요. 가리지 않고 그냥 그대로 내놓고 밖에 나간다고 했습니다.
처음 들으면 앞뒤가 안 맞는 말입니다. 멍은 아팠던 자리이고, 보통은 가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를 들으면 그 말이 이해가 됩니다.
맞아도 멍이 안 드는 몸이 왜 싫었을까요?
이분은 어릴 때 어머니에게 많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맞아도 멍이 안 드는 몸이었습니다. 그것이 이분에게는 다행이 아니었습니다.
멍이 들면 저녁에 아버지에게 보여 주고 말할 수 있었을 텐데, 보여 줄 것이 몸에 남지 않았습니다. 멍이 있었다면 아버지가 먼저 보고 “몸이 왜 저래?” 하고 물어 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은 자기 몸이 싫었다고 했습니다. 맞은 자리가 싫었던 것이 아닙니다. 맞은 것이 남지 않는 몸이 싫었던 것입니다.
멍이 있었다면 아버지에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멍이 있었다고 해도 아버지에게 말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멍을 보고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어머니가 때렸다는 것이 드러나 어머니가 혼이 납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혼난 일을 아이에게 되갚을 것이라는 걸 아이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이것을 보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이 앞에는 두 갈래가 있었습니다. 멍이 있으면 보여 주고 알릴 수 있지만, 알리면 보복을 당합니다. 멍이 없으면 보여 줄 것이 없습니다. 말로만 이르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말로 일러도 보복을 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쪽이든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견딜 수 없는 기억을 가둬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은 이런 일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미쳐버립니다. 그래서 그 기억을 평소에는 자기도 꺼내 볼 수 없는 곳에 가둬놓습니다. 이곳을 무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억은 가둬 두어도, 몸은 어릴 때 하던 것을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합니다. 이분에게는 잠잘 때 그랬습니다.
이분은 너무 많이 맞다 보니 자기가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애벌레인 줄 알았다고요. 어릴 적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겪기 전까지는 침대에서 자도 늘 끝에서 애벌레처럼 웅크리고 잤습니다. 자다가 흑흑 소리를 냈습니다. 어릴 때는 울면 혼나니까 못 울었고, 그 울음이 잠결에 나온 것입니다. 남편이 그것을 보기 버거워했다고 합니다.
회초리를 옆에 두고 공부가 됐을까요?
자기가 애벌레인 줄 알았던 이분은 “애벌레가 공부를 잘하겠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정말 못했고 늘 꼴찌였습니다. 어머니가 공부를 시키는데 회초리를 옆에 갖다 놓고 시켰습니다. 그러니 집중이 안 됩니다. 회초리가 옆에 있으니 언제 맞을지 모르고, 그 공포와 두려움이 아이를 사로잡습니다. 받아쓰기는 매일 20점이었습니다.
여기서 순서를 뒤집으면 안 됩니다. 공부를 못해서 회초리가 옆에 온 것이 아닙니다. 회초리가 옆에 있어서 20점이 나온 것입니다. 앉아 있는 동안 아이의 힘이 글자가 아니라 옆에 놓인 회초리를 살피는 데에 다 쓰였습니다.
95점을 못 올려놓은 아이는 자기를 어떻게 느낄까요?
초등학교 때 95점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시험지를 겹쳐서 걸어놓았습니다. 아이들 창피를 주려고 그랬나 싶다고 했습니다. 밑에는 빵점짜리 시험지도 있고 20점짜리도 있었습니다. 이분이 그 95점짜리를 맨 위에 올려놨는데, 어머니가 못 올려놓게 했습니다.
20점은 매일 받았습니다. 95점은 한 번 받았는데, 그마저 위에 올려놓지 못했습니다. 맞은 것은 몸에 남지 않고, 잘한 것은 위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이 아이가 겪은 일도, 해낸 일도 밖에서는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분은 자존감도 낮고, 자기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도 참 낮았다고 했습니다.
시험에 붙었는데 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요?
이 낮은 자존감이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성인이 돼서 본 시험까지 이어집니다. 이분은 몇 년 전에 상담사 시험에 붙었습니다. 붙었으면 ‘아, 진짜 잘했다’ 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됐습니다.
합격 소식을 듣고 이분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컴퓨터 채점이 잘못됐을 거야.’ ‘이제 연락이 와서, 채점이 잘못돼 떨어졌다고 할 거야.’ ‘연락이 안 오면, 아주 간신히 붙었을 거야.’ 이분은 그러고 있는 자신을 봤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95점 시험지를 맨 위에 올려놓지 못했던 일과 같습니다. 어릴 때는 어머니가 못 올려놓게 했습니다. 이번에는 말리는 사람이 없는데도 본인이 자기 합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할 수 있는 게 없던 아이에게서 왜 공격성이 많아질까요?
맞을 때 어머니는 힘이 셌고 어린아이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느낌을 무력감이라고 합니다. 멍이 안 드는 몸에서 이 무력감이 잘 드러납니다. 맞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맞았다는 것이 몸에 남지도 않으니 알릴 수도 없습니다.
아이는 이 무력감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맞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을 메우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런 마음을 보상 심리라고 합니다. 이 마음 때문에 지지 않으려는 힘이 많아집니다. 이 힘을 공격성이라고 합니다. 이분은 자기가 공격성이 많다고 했습니다.
공격성이라고 하면 나쁜 것으로 들립니다. 나쁜 것으로 보면 그 사람은 자기 힘을 눌러야 합니다. 힘을 누르고 나면 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무력감이 한 번 더 오는 것입니다.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위니캇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공격성은 나쁜 것이 아니고 에너지가 된다고 봤습니다. 이분은 지금 에너지가 정말 많다고 했습니다. 공격성이 에너지가 된 것입니다.
어릴 때 겪은 일은 어른이 된 뒤 무엇으로 남을까요?
처음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이분은 지금도 멍이 들면 좋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 이분이 싫었던 것은 맞아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몸이었습니다. 멍이 들어야 아버지에게 보여 줄 수 있었는데, 멍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 일이 어른이 된 지금, 멍이 들면 좋은 마음으로 남았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무엇이 반복되는지 보입니다. 반복되는 것은 맞은 일 자체가 아닙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때의 모습이 어른이 된 뒤에도 되풀이됩니다. 결혼한 뒤에도 애벌레처럼 침대 끝에 웅크려 잤고, 시험에 붙고도 95점 시험지를 못 올려놓던 때처럼 합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이분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남 앞에서 설명이 잘 안 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 모습은 대개 어릴 때 견딜 수 없던 상황에서 아이가 찾아낼 수 있었던 방법입니다. 그 상황은 지나갔는데 방법만 남아서, 어른이 된 뒤에도 계속 나옵니다. 이분도 어릴 때는 울면 혼나니까 울음을 참았고, 견딜 수 없는 기억은 가둬놓았습니다. 그렇게 참았던 울음이 어른이 된 뒤 잠결에 흑흑 소리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 시절이 남긴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힘입니다. 무력감을 메우려다 많아진 공격성이 지금은 이분의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반복이 멈춘 것도 있습니다. 이분은 웅크리고 잤던 이야기를 하면서 “치유 과정을 겪기 전까지는”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자지 않는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