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으로 다 잘라버리고 싶다고 말한 분이 있었어요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자리에서 어떤 얘기든지 괜찮다고 자리를 만들어 드려도, 말이 쉽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자기가 되게 선한 기준을 갖고 자기 마음을 막아 왔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람이라면 품지 않을 생각은 내 안에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미리 정해놓은 것입니다. 그렇게 정해놓으면 그 생각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말이 되지 못한 채로 안에 남습니다.
이런 분이 있었어요. 기회가 되어 입을 열었는데, 그런 사람 톱으로 다 잘라버리고 싶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얘기를 하는 동안 이분이 조금씩 조금씩 이성을 찾게 됐습니다. 누구를 자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그 순간, 어린 시절의 어떤 아저씨가 올라왔습니다. 그 아저씨의 손길이요. 그동안 억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얘기를 하면 그 행동을 안 합니다
여기서 순서를 거꾸로 아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 말을 입에 올리면 그런 일을 저지를 것 같다고요.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하면 우리가 그 행동을 안 합니다. 안을 놓고 이렇게 있을 때 그 행동을 하게 되는 거예요.
다만 이 일이 일어난 곳이 어디였는지는 같이 보셔야 합니다. 어떤 얘기든지 괜찮다고 자리를 만들어 주고, 그 말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는 자리였습니다. 말이 되어 나온 것은 내가 보는 대상이 됩니다.
이름이 붙지 않은 것이 어떻게 사람을 붙잡고 있는지는 「미워하고 있으면, 슬퍼하지 않아도 됩니다」에서 따로 다루었습니다. 여기서 볼 것은 그 반대쪽입니다. 톱 얘기를 하던 그분은 말을 꺼내는 동안 바로 그 자리에서 이성을 찾아갔고, 반대로 안에 그냥 놓아둔 것은 대상이 되지 못하고 그러다 그 행동으로 갑니다.
슬픔은 슬픔으로, 기쁨은 기쁨으로 말이 되어 나오게 하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이 자리가,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그 자리입니다. 우리 안의 것들을 잘 들여다보고 케어해주고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슬픔은 슬픔으로 기쁨은 기쁨으로, 우울함은 우울함으로 이것을 허용해 주고 받아준 이 과정들이 나를 사랑하는 그 과정이에요. 슬픔을 슬픔으로 받는다는 건 슬픔에 다른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슬픈데 괜찮다고 하지 않고, 슬픈데 나약하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 갖고 오세요, 그리고 먼저 용서를 해줘야 돼요
내가 뭔가 부족하다, 내가 약하다, 나는 이런 게 참 안 된다. 그것을 부인하기보다는 다 갖고 오세요. 자기한테요. 그리고 먼저 용서를 해줘야 돼요. 계속 못됐다는 느낌이 들 때 그 위에 좋은 말을 계속 붙이지 말고, 그냥 그래 내가 못됐다 인정하고 못된 나를 용서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태어난 게 내 잘못인 것 같아요
상처가 많을수록 이런 마음이 듭니다. 딸로 태어난 게 내 잘못이야, 이런 마음이요. 아니라고 한 번 얘기해도 안 되면 그거 굳이 아니라고 얘기할 것 없이 그냥 갖고 와버려요. 갖고 와서 딸로 태어난 건 내 잘못입니다 하고, 그 잘못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아예 내 것으로 갖고 와야 용서할 대상이 내 손에 들어옵니다. 밖에 세워두고는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건 짚고 가야겠습니다. 안 떨어지려고 하는 것을 혼자 계속 떼려고 해 봐야 잘 되지 않습니다. 여기는 전문적으로 심리적 접근이 필요하고, 일반인들이 이거 떼내기는 어려워요. 오늘 읽고 혼자 안 된다고 해서 자기를 다시 탓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닌데 왜 용서를 하지?
여기서 반문이 올라옵니다. 아니 그건 내 잘못이 아닌데 왜 용서를 하지? 잘못한 게 없는데 용서한다고 하면 없는 죄를 내가 뒤집어쓰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아니야 내 잘못이 아니야 하고 밀고는 있지만, 느낌은 계속 자기 잘못이라고 느껴집니다. 밀어내려고 하는 게 인정을 안 해주는 거거든요. 밀어내는 힘만큼 그 느낌은 그 자리를 지킵니다.
심리적 실제는 외적 실제보다 더 강합니다
머리로는 내 잘못이 아닌 걸 아는데도 마음에서는 진짜로 자기 잘못으로 느껴지는 것, 이것이 심리적 실제입니다. 그리고 심리적 실제는 외적 실제보다 더 강합니다. 밖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보다, 내 안에서 그렇게 느껴지는 쪽이 나를 더 많이 움직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할 일은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게 아닙니다. 고쳐야 할 것이 사실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네가 태어난 것은 네 결정이 아니었다고 백 번 확인해줘도, 확인은 밖의 일이고 느낌은 안의 일이라 서로 닿지 않습니다.
그 느낌을 실제로 있는 것으로 놓고 봐야 돼요. 그렇게 놓고 부정하지 말고 인정을 해줘야 됩니다. 인정을 해줘야 그 마음이 내 손에 들어오고, 손에 들어온 다음에야 용서라는 말이 갈 자리가 생깁니다.
인정으로 받는가, 자기 처벌로 받는가
내가 못됐다까지 갖고 오라는 말이 나를 벌주라는 말로 읽히면 반대로 갑니다. 「나를 돌아볼수록 왜 더 미워질까요」에서 도덕적인 판단을 떼어내라고 한 것과, 여기서 내가 못됐다를 갖고 오라고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입니다. 갈라지는 자리는 그 문장 뒤에 무엇이 붙는가입니다.
그래 내가 못됐다 다음에 그러니까 나는 이런 인간이다, 그러니까 나는 벌을 받아야 한다가 붙으면 자기 처벌입니다. 마음 하나를 인정한 게 아니라 사람 전체에 판정을 내린 것입니다.
같은 문장 다음에 그 못된 나를 용서한다가 붙으면 인정입니다. 지금 내 안에 이런 마음이 있다에서 문장이 끝나고, 그 마음은 인정을 받습니다. 떼어낼 것은 나에게 내리는 판결이고, 갖고 올 것은 그 느낌입니다.
나의 몸을, 내 감정을, 내 생각을, 나의 환상까지
자기가 아무리 작은 존재라도 존재 자체를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 그 과정이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의 몸을, 내 감정을, 내 생각을, 그리고 나의 환상까지요.
이 환상에서 많이들 안 합니다. 환상은 되게 다 기괴하기 때문에 입 밖에 잘 안 내려고 하고, 부인하려고 해요. 안 돼, 하면서 덮습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않으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걸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의미는 아닙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해치는 그림이 안에서 지나갔을 때, 그걸 나쁘다고 평가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내가 지금 되게 화가 나 있구나, 이 정도만 받아주면 돼요. 받아준다는 것은 그 그림을 더 그려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것을 지나간 대로 두는 것입니다. 우선 여기까지면 됩니다.
안에서 지나간 것을 두고 이런 사악한 행동을 내가 하다니, 하면서 덮으면 더 문제가 커집니다. 모든 인간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그러니 나쁘다고 하지 말고 그 환상들을 사랑해주는 과정으로 갑니다.
그래서 여러분, 스스로 사랑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