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을 챙기려니 죄책감이 먼저 올라왔습니다

내 것을 챙기는 순간에 미안함이 먼저 올라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챙기긴 챙겼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음번에는 챙기는 일을 미룹니다. 미루다 보면 내 몫으로 챙길 것이 남지 않습니다.

듣기 싫은 ‘이기적’이라는 말을 왜 일부러 꺼낼까요?

‘이기적’이라는 말은 우리가 그렇게 듣기 싫어하는 단어입니다. 누가 나를 두고 이기적이라고 하면 바로 억울해지고, 스스로 그 말을 떠올려도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런데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이 단어를 일부러 꺼내 보려 합니다. 사랑과 반대인 말처럼 들리지만, 사랑이라는 큰 주제 안에는 이기적인 것도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내 것을 챙기려는 이기적인 마음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나중에 남을 위하는 이타적인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이타성, 곧 남을 위하는 마음은 나를 소진시키지 않습니다. 소진은 안에 있던 것을 다 써서 남은 게 없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이기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먼저이고, 남을 위하는 일은 그다음이라는 순서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내 것을 챙기는 일과 그 뒤에 올라오는 죄책감은 같은 것일까요?

내 것을 챙기고 나서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일이 흔합니다. 챙기는 데까지는 했는데, 챙긴 다음에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나’ 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챙기기 전에 먼저 망설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둘 말이 있습니다. 당신 것을 챙길 수 있어야 하고, 당신의 것을 지키고 챙기는 일에 죄책감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내 것을 챙기는 행동과, 그 행동 뒤에 따라붙는 죄책감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 챙기는 일은 필요한 일입니다. 죄책감은 그 일에 따라올 뿐, 챙기는 일의 일부가 아닙니다. 그러니 챙긴 뒤에 죄책감이 올라온다고 해서, 챙긴 일이 잘못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기적인 게 베이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기적인 게 베이스입니다. 베이스는 밑에 깔리는 토대라는 말입니다. 그 이기적인 토대 위에 이타성이 있어야 합니다.

집을 지을 때와 같은 순서입니다. 바닥을 먼저 다지고 그 위에 벽을 세웁니다. 여기서 바닥은 나를 챙기는 일이고, 그 위에 세우는 벽은 남을 위하는 일입니다. 순서를 뒤집으면 바닥 없이 벽만 세운 집이 됩니다. 밖에서 보면 집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이 버티지 못합니다.

남을 돕고 나서 뿌듯한 게 아니라 안이 텅 비는 느낌이 든다면, 남을 위하는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나를 챙기는 토대 없이 남을 위하는 일만 올려 둔 상태에 가깝습니다. 이타성이 나를 소진시키지 않고 살아 있으려면, 나를 챙기는 그 토대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남을 위하기 전에 먼저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나를 아끼고 내 것을 챙기는 일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기적인 게 베이스라면, 내 것만 챙기라는 말인가요?

여기서 오해가 생기기 쉽습니다.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내 것만 챙겨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 것을 지킬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내 것만 챙기는 것과 내 것을 지키는 힘, 이 둘은 겉으로 비슷해 보여서 자주 섞입니다. 그래서 내 것을 지키려 할 때도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내 것을 지키는 이 힘을 굳이 ‘이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남보다 나를 먼저 챙기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나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먼저 챙기는 것입니다.

사랑의 순서는 어디서부터 시작될까요?

나를 먼저 챙기는 것처럼, 사랑도 순서가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데서 시작해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도 겉으로 보면 이타적으로 보입니다. 하는 일도 남을 위한 일이고, 주는 것도 실제로 줍니다. 그런데 받는 사람에게는 그 주는 마음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겉으로 보이는 모양이 아니라, 주는 마음이 진실할 때 전달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나 하나만의 이야기일까요?

그렇다고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 ‘나’ 하나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는 늘 너, 곧 다른 사람과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자기사랑은 나와 너를 둘로 갈라놓고 나 한쪽만 사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렇게 나와 너를 둘로 쪼개는 것을 분열이라고 합니다. 자기사랑은 하나로 묶여 있는 나와 너를 함께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나와 너를 이렇게 갈라놓지 않는 것은 오직 사랑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이고, 사랑은 분열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엇도 밀어내지 않고 모든 것을 안으로 들여 포함합니다. 그래서 사랑하기 시작하면 상대를 다 수용하고 받아들입니다.

사랑하지 않을 때 나와 상대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고, 갈등이 일어납니다. 분열과 두려움, 고통과 갈등은 우리가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갈등이 내가 선택해서 생긴 거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바깥 상황이고 바깥 사람들이라고 느낍니다. 내가 사랑했는지 안 했는지는 이 갈등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나와 상대가 갈라져 있을 때는 싸움이 일어나고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상대를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해 버리니까, 상대가 뭐라고 하든 내가 아는 것만 듣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 반대로, 상대가 하고자 하는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사랑은 나와 너를 함께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것을 챙기는 일은 너를 밀어내는 일이 아닙니다. 둘을 함께 사랑하되, 사랑은 나에게서 시작해 너에게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순서상 내가 먼저인 것뿐입니다.

내 것을 먼저 챙길 수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아끼고, 내 것을 먼저 챙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게 행복하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챙기고 나서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챙기는 일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따라붙은 죄책감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 것을 챙기려는데 죄책감이 먼저 올라온다면, 챙기지 말라는 신호로 읽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나’ 하는 마음이 올라와도, 내 것을 챙기려는 마음을 그대로 인정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하면 됩니다. 나를 챙기는 이 토대가 놓인 다음에 올라가는 이타성이, 나를 소진시키지 않는 이타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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