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말에 어린아이처럼 서러워지는 감정은 과거에서 올까요, 현재에서 올까요?
사소한 말에도 어린아이처럼 서럽거나 억울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심리치료에서는 이런 감정을 이해하려고 ‘내면 아이’라는 비유를 쓰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에 사랑과 돌봄을 바라는 만큼 받지 못한 경험, 그리고 그때 익힌 반응이 지금도 영향을 준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어릴 때 구박을 많이 받은 사람은 지금 상대가 구박하지 않았는데도 구박으로 듣고 기분이 상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어린아이가 실제로 숨어서 나를 조종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 드는 서러움이나 짜증, 분노가 모두 과거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현재 누군가가 실제로 무례했거나 내가 지쳐서 예민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문제를 함께 살펴야 지금 상황에 맞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죄책감으로 상대를 움직이려 하면 상대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요?
어린 시절에 익힌 반응은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방식으로도 나타납니다. 그중 하나가 죄책감으로 상대를 움직이려는 것입니다. 부모가 ‘너 때문에 내가 아프고 힘들다’고 반복하며 아이의 선택을 바꾸려 하면, 아이는 부모가 아프고 힘든 것이 자기 탓 같아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자신의 판단보다 부모의 감정을 먼저 책임지게 됩니다. 배우자에게 일부러 차갑게 대하거나 아픈 모습을 과장하는 것도 같은 방식입니다. 배우자는 미안한 마음에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고 자기 판단보다 내 기분을 먼저 책임지게 됩니다. 이렇게 죄책감으로 상대를 움직이려는 사람에게는 버려질까 두려운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두렵다는 이유로 상대를 조종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이런 방식을 쓰고 있다면, 일부러 차갑게 굴거나 아픈 모습을 과장해 원하는 것을 돌려서 알리는 대신 직접 말로 요청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락이 없으면 불안하니 늦을 때는 알려 줬으면 해’라고 말하고 상대의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은 이해받을 수 있지만 상대에게 죄책감을 주어 움직이게 한 행동은 고쳐야 합니다.
슬프고 화나는 감정이 들면 자기 사랑이 없다는 뜻일까요?
슬프고 화나는 감정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생깁니다. 앞에서 말한 내면 아이, 곧 마음속 어린 시절의 나를 돌보는 것을 자기 사랑의 시작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쾌한 감정이 계속되면 ‘내가 내 안의 아이를 돌보지 않았구나, 나를 사랑하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감정이 계속된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단정하면, 실제로 해결해야 할 관계 문제나 마음이나 몸에 생긴 병을 놓칠 수 있습니다. 감정은 내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매기는 점수가 아닙니다. 지금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게 하는 정보입니다.
먼저 필요하면 잠시 자리를 벗어나 몸을 진정시킵니다. 그리고 지금 드는 감정에 이름을 붙인 뒤 원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서운하다. 과거에 무시당했던 기억이 건드려졌고 동시에 상대가 약속을 어긴 것도 사실이다’라고 과거의 기억과 지금 일어난 일을 함께 보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서운한 나를 스스로 달래고 약속을 어긴 일에는 상대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달랜다는 것은 서운한 마음을 무시하지 않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잘 달랬는데도 같은 감정이 또 올라오면 회복에 실패한 걸까요?
잘 달래 놓았는데도 어느 순간 같은 감정이 또 올라오면 ‘내가 아직도 변하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상처에서 회복했다고 해서 같은 감정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분노가 올라오자마자 자녀에게 소리를 지르던 사람이, 이제는 잠시 자리를 벗어나 진정한 뒤 말할 수 있다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감정이 다시 올라왔느냐보다 그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졌느냐를 보아야 합니다.
슬플 때 우는 것, 화난 마음을 충분히 인정하고 화가 났다고 말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면서 날마다 스스로를 달래 주면, 쌓인 감정이 자녀를 기죽이거나 때리는 식의 행동으로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다만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은 안전해야 합니다. 타인을 위협하거나 물건을 부수는 행동은 감정 표현이 아니라 해를 끼치는 행동입니다. 혼자 조절하기 어렵다면 상담자의 도움을 받아 감정을 조절하는 법과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직접 말하는 법을 연습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회복의 목표는 아닙니다. 감정이 올라왔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자신과 타인을 해치지 않으면서 필요한 위로와 해결책을 선택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회복입니다. 다시 힘들어진 날은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날이 아니라 배운 방법을 다시 써 볼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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