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마음속 부모 이미지는 같은 대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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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의 경험은 하나님을 상상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어린 시절 작은 실수에도 크게 혼난 사람은 하나님도 늘 잘못을 찾아 벌주는 분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려울 때 보호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기도할 때 도움을 청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떠올릴 때, 태어나 가장 먼저 맺은 관계인 부모와의 기억을 빌려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마음속 부모 이미지와 하나님이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부모와의 관계는 신앙 경험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경을 읽고, 신앙 공동체 안에서 지내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삶에서 여러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 부모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다면, 마음속 부모 이미지를 치우고 그 대신 하나님을 앉혀 놓는 것만으로 치유가 끝나지도 않습니다.

심리학의 ‘자기’와 신학의 하나님은 무엇이 다를까요?

정신과 의사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사람의 마음을 설명하면서 ‘자기(Self)’라는 말을 썼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내가 알고 있는 마음(의식)도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움직이는 마음(무의식)도 있습니다. 융이 말하는 ‘자기’는 이 둘을 모두 아우르는 마음 전체이면서 동시에 그 마음 전체의 중심을 가리킵니다. 이 ‘자기’를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과 그대로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자기’는 사람의 마음을 설명하려고 심리학이 쓰는 말이고 ‘하나님’은 사람을 넘어서 계신 분을 가리켜 신앙이 쓰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심리학의 말과 신앙의 말을 구분해 두면, 심리치료와 신앙은 상대의 일에 끼어들지 않으면서도 서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심리치료는 내가 하나님을 두렵게만 느끼게 된 까닭을 지금까지 겪어 온 나의 경험에서 찾아 살필 수 있습니다. 신앙은 그 경험만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정해 버리지 않도록, 하나님을 더 넓게 이해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일과 용서하는 일은 기독교에서 무엇을 뜻할까요?

기독교의 관점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옳다고 여기거나 자신을 하나님 자리에 놓고 자기만 섬기는 것과 다릅니다. 기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지어졌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똑같이 존엄한 존재로 봅니다. 자신을 돌보는 것은 이 믿음에 따라 내 몸과 마음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일에 가깝습니다. 모욕과 폭력을 참고 견디는 것을 무조건적인 희생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도 자신을 돌보는 일에 들어갑니다. 필요할 때 ‘여기까지는 안 된다’고 선을 긋는 것, 곧 경계를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용서한다고 해서 상처를 없던 일로 하거나, 나를 해친 사람에게 다시 다가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는 오히려 그 사람이 나에게 한 일이 잘못이었다고 정확히 인정하고 다시 다치지 않도록 안전을 확보한 뒤, 그 일로 생긴 분노와 슬픔을 다루어 가는 긴 과정일 수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용서하는 것과 법적·현실적 책임을 묻는 것은 함께 갈 수도 있습니다.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는 믿음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일까요?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를 믿음이 부족한 탓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그 상처가 외상 반응이나 우울, 불안으로 나타날 때는 기도가 힘이 될 수 있더라도 전문적인 치료가 함께 필요할 수 있습니다. 외상 반응이란 견디기 힘든 일을 겪은 뒤 그 기억이 자꾸 되살아나고 작은 일에도 몸과 마음이 크게 놀라는 반응을 말합니다. 신앙 공동체가 피해자에게 빨리 용서하라고 압박하면 오히려 상처가 깊어질 수 있습니다. 용서보다 먼저 안전한 관계 안에서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보호받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내가 떠올리는 하나님의 모습 가운데 부모를 보며 배운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정직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 마음속 부모 이미지를 치우고 그 대신 하나님을 앉혀 놓기보다 부모에게서 비롯된 두려움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구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늘 내 잘못을 찾아 벌주실 것만 같아 두렵다면, 그 두려움이 어린 시절 작은 실수에도 크게 혼나던 경험에서 온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 둘을 구분할 수 있게 되면, 하나님을 대할 때 과거의 상처를 되풀이하지 않게 됩니다. 그때 신앙은 부모와 겪었던 관계와는 다른, 새로운 관계를 하나님과 맺어 갈 수 있게 돕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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