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미움은 어디에서 올까요?
특별한 사건이 떠오르지 않는데도 어떤 사람이 밉고 그 사람 이름만 들어도 몸이 굳을 때가 있습니다. 또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행동을 반복하면서도 이유를 말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이유가 같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 감당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감정과 말로 정리되지 못하면 마음에 덩어리처럼 남습니다. 그 덩어리는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곳에 있어서 무슨 일 때문인지는 떠오르지 않은 채 몸의 반응과 행동으로 나옵니다.
정신분석가 비온은 이 덩어리를 소화되지 못하고 마음에 얹혀 있는 경험으로 보았습니다. 이 덩어리가 있으면 사람은 무엇이 괴로운지도 모르는 채 불쾌감과 충동에 밀릴 수 있습니다. 그 경험을 소화하려면 먼저 그때 내가 느낀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리고 말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감정을 알아차려 말로 하는 일을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고 합니다. 이름이 붙은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그 경험은 더 이상 마음에 얹혀 있지 않고 소화됩니다. 비온의 이 설명은 미움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식이지, 모든 미움의 원인을 확정하는 진단은 아닙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그 사람이 밉다’에서 멈추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무엇이 떠오르는지 말하다 보면 ‘무시당해서 화가 났다’,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는 문장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름이 붙기 전에는 나도 모르게 그 감정대로 말하고 행동했지만 이름이 붙으면 그 감정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아프지만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다뤄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감정을 없애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룰지 판단하려는 것입니다. 무시당해서 난 화라면 상대와 나 사이에 선을 그어야 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사랑받을 수 없다는 슬픔이라면 잃은 것을 떠나보내며 슬퍼할 시간, 곧 애도의 시간이 필요한지 볼 수 있습니다.
왜 슬픔보다 미움을 오래 붙들게 될까요?
미움에는 비난할 상대와 공격할 방향이 있습니다. 미워하는 동안에는 상대를 탓하며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반면 슬픔은 잃은 것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 사실 앞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력해집니다. 그래서 사람은 마음속에 슬픔이 가득 차 있어도 그 슬픔을 느끼지 않으려고 미움을 오래 붙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를 계속 미워하는 동안에는 부모가 여전히 잘못을 따져 물을 상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부모가 잘못을 인정하고 내가 받아야 했던 사랑을 줄 것이라는 기대도 계속 붙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움 아래의 슬픔을 만나면, 그 사랑이 끝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현실까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니 슬픔을 만나는 일은 계속 미워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미움 아래의 감정은 어떻게 안전하게 말로 꺼낼 수 있을까요?
혼자서는 ‘그 사람이 밉다’는 생각만 머릿속에서 반복될 수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말할 때는 다릅니다. 들어 주는 사람이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들은 내용을 나에게 다시 말해 주면, 그 말을 들으면서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지 처음 알게 되기도 합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이렇게 내 말을 받아 주는 사람 앞에서 훨씬 쉬워집니다.
미움을 억지로 내려놓거나 용서부터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피해를 입었다면, 먼저 그 일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하고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나를 지켜야 합니다. 그 뒤에 내 미움이 어떤 슬픔을 느끼지 않게 막아 주고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직 슬퍼하지 못한 상실을 애도할 수 있습니다. 애도는 잃은 것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것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붙들고 있던 과거를 떠나보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과거를 떠나보내면 현재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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