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했다, 이 느낌으로 가져와요

어릴 때 부모에게 좋은 돌봄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두려운 상황에 놓였다는 뜻입니다. 꼭 엄마가 무서웠다거나 아빠가 무서웠다거나 하는 일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인간은 기본적으로, 좋은 돌봄을 받지 못하면 그것만으로 두려움이 남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삭막해지면 사람은 어떻게 변할까요?

돌봄을 못 받아 두려움이 남으면, 그 사람에게 세상은 삭막한 곳이 됩니다. 세상이 삭막해지면 사람은 어떤 자세를 취할까요. 전쟁이 난 나라를 떠올려 보면 됩니다. 전쟁이 나면 모든 사람이 편집적 상태, 곧 아무도 믿지 못하는 상태로 들어갑니다. 서로 의심하고, 자기가 안 당하려고 방어 태세를 취하고, 질서도 법도 무너집니다.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것이 바로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이 남은 사람도 이처럼 세상을 의심하고, 자기가 안 당하려고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바로 이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이 나빠서 범죄자가 되는 게 아니에요. 두려움 속에서 자기가 살아나가려고 애쓰는 거예요. 그렇게 애쓰는 절규의 모습들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두려움을 겪은 사람이 어떻게 남을 두렵게 만들게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당했다’고 느낀 사람은 커서 어떻게 될까요?

두려움을 겪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것은, 두려운 환경에 놓였던 일 자체를 ‘내가 당했다’, 이 느낌으로 가져오기 때문이에요. 마음에 ‘내가 당했다’는 느낌이 남는 거예요. 좋은 돌봄을 못 받은 것도 그 자체로 두려운 환경에 놓인 것이니, 이때도 이 느낌이 남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경험을 반복합니다. 좋든 나쁘든 반복돼요. ‘내가 당했다’는 그 경험도 반복되는데, 자기가 커서 힘이 생겼을 때는 다른 사람을 두렵게 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두려움을 많이 느끼면 느낄수록 이런 면이 많이 발달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을 굉장히 두렵게 만듭니다.

술에 취해 건 전화 한 통이 왜 오싹할 만큼 무서웠을까요?

이런 사례가 있었어요. 알코올 중독인 사람인데, 술에 딱 취하면 여자들에게만 전화를 합니다. 남자들에게는 잘 안 해요. 그런데 그 전화를 받는 사람이 느끼는 것은 오싹할 정도의 공포입니다. 말만 놓고 보면 일반적인 대화를 하는 것 같은데,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느낌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이 사람이 올까 봐 무서워할 정도예요. 사람은 그 정도로 강렬하게 상대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렸을 때 그 두려움을 그만큼 많이 받아온 사람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두려움을 많이 느끼면 느낄수록 커서 남을 두렵게 하는 면이 많이 발달하는 거예요.

이 사람은 의도를 갖고 겁을 주는 걸까요?

이 사람은 의도성을 갖고 두려움을 주지 않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겁줘야겠다고 마음먹고 하는 게 아니에요. 어릴 때의 경험이 다시 반복될 때는 무의식적으로, 곧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그저 자기를 표현한다고 하는 건데, 그것이 다른 사람을 겁나게 만들어 버립니다. 모든 폭력과 파괴가 사실은 어릴 때 두려웠던 그 경험에서 나옵니다.

빼앗긴 사람에게 되찾아 오는 일은 어떻게 느껴질까요?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 말고도 있었던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박탈입니다. 박탈은 단어 뜻 그대로, 어릴 때 처음에는 주어졌던 것을 그다음에 빼앗긴 것입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빼앗겼다는 생각 때문에 되찾아 오려는 마음이 아주 강하게 생깁니다. 내가 빼앗겼으니까 되찾아 와야 되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런데 이 되찾아 오는 과정이 도둑질이 되기도 합니다. 속으로는 ‘내가 잃어버렸으니까, 내가 이것을 가져도 돼’ 하기 때문이에요. 또 원래 있어야 할 것을 잃어버렸으니, 마음속에 그만큼 빈 공간이 생깁니다. 사람은 그 빈 곳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빈 곳을 채우려는 이 마음에 욕심도 같이 자극이 됩니다. 그래서 빈 곳을 채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 많이 가져가려고 해요.

이렇게 가져가는 일은, 밖에서 보면 명백히 남을 침범하는 것이고 폭력입니다. 그런데 박탈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정당하다고, 당연하다고 느껴집니다.

편도체 알람이 울리면 왜 좋은 말도 안 들어올까요?

다시 두려움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평온을 가져라, 여유를 가져라’ 하잖아요.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사람은 공격적이지 않게 되거든요. 두려움이 이 여유를 어떻게 없애는지는 우리 뇌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뇌 한가운데에 있는 편도체가 두려움 신호를 울리는 알람이거든요. 이 알람이 울리면 ‘지금 주변이 위험하니 빨리 공격을 하든지 도망을 치든지 아니면 꼼짝 말고 있든지 선택해라’ 하고 우리 몸을 각성시킵니다. 몸이 위험에 대비해 바짝 긴장한 상태가 되는 거예요.

그 각성 상태가 되면 여유롭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말도 우리에게 안 들어와요. 어떠한 좋은 말도 안 들어옵니다. 이 상태에 있으면 부부가 대화를 할 때도, 누가 나를 비난할 때도, 그 사람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누가 나를 비난하면 받아칠 생각만 합니다.

비난을 들으면 받아칠 생각만 드는 것은 병일까요?

비난을 들으면 받아칠 생각만 드는 것, 이것은 병이 아닙니다. 그게 그냥 인간의 정상적인 모습이에요. 편도체 알람이 울리면 누구나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 비난하지 말고 이야기를 해야 서로가 소통이 됩니다. 말에는 말투나 분위기로 전해지는 파장이 있습니다.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공격적인 파장이 나가면, 상대는 그것을 딱 감지하고 일단 공격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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