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받지 않으려고 남에게 맞추다 보면 왜 내 감정이 낯설어질까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늘 웃고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원만하게 지내지만 혼자 남으면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지쳤는지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오랫동안 타인의 반응을 먼저 살피느라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확인하는 연습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듣는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도 이런 사람에게는 막연하게 들립니다. 사랑하려 해도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내 마음을 모르는 것은 사랑해야 할 내가 없어서라기보다 두려움 때문입니다. 진짜 마음을 드러내면 관계에서 밀려날 것 같아 늘 남의 반응부터 살피고 속마음은 감춥니다. 그렇게 오래 지내다 보니 혼자 있을 때도 내 마음이 어떤지 알아차리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가면은 거짓된 인격일까요, 관계에서 살아남으려고 배운 역할일까요?
여기서 가면이란 남이 나를 비난할까 봐 진짜 마음은 드러내지 않고 다른 모습인 척하며 보여 주는 겉모습을 말합니다. 앞에서 말한,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늘 웃는 모습도 가면입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말과 행동을 조절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 능력입니다. 직장에서 떠오르는 감정을 모두 말하지 않고 예의를 지키는 것도 일종의 가면이지만 이것까지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회에서는 적당한 가면이 필요합니다. 어느 관계에서도 가면을 내려놓지 못하고 속마음과 겉모습의 차이 때문에 계속 고통스럽다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어린 시절 화를 내면 혼나고 슬퍼하면 약하다는 말을 들었다면, 아이는 밝고 의젓한 모습만 보여야 안전하다고 배웁니다. 화나고 슬픈 마음은 감추고 보여 주는 이 밝고 의젓한 모습이 아이의 가면입니다. 그러니 가면은 거짓된 인격이 아니라, 관계에서 살아남으려고 배운 역할일 수 있습니다. 이 역할은 그때는 아이가 혼나거나 약하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지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된 뒤에는 이 역할이 도움을 청하거나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가면을 내려놓고 자기를 찾는다는 것은 무엇을 알아 가는 일인가요?
가면을 오래 쓰고 살면, 앞에서 본 것처럼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가면을 내려놓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알아 가야 하는데 이것을 자기를 찾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관계와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족과 있을 때의 나, 일할 때의 나, 혼자 있을 때의 나 가운데 어느 하나만 진짜이고 나머지는 거짓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자기를 찾는다는 것은 어딘가에 숨겨진 진짜 모습 하나를 찾아내는 일이 아닙니다. 그 여러 모습 속에서 반복되는 감정과 욕구, 그리고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알아 가는 과정입니다. 가면이 가리고 있던 진짜 마음도 바로 이런 감정과 욕구입니다.
또 내가 나를 보는 눈이 늘 정확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자기 외모를 실제보다 못하게 여기기도 하고 반대로 자기 능력을 실제보다 크게 여기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남에게 받아 온 평가와 요즘의 마음 상태가 내가 나를 보는 눈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를 볼 때 외모나 능력이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누구 앞에서, 어떤 작은 진실부터 말해 볼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 앞에서 가면을 벗을 필요는 없습니다. 내 약점을 이용하거나 비밀을 퍼뜨리는 사람에게 속마음을 공개하는 것은 진솔함이 아니라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친구나 상담자처럼 속마음을 말해도 모욕받지 않는 관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부터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내 감정을 글로 적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오늘은 만나고 싶지 않아’, ‘그 말에 서운했어’, ‘사실은 이 일을 좋아하지 않아’처럼 작은 문장부터 말해 볼 수 있습니다.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어디까지 털어놓을지 조절해 갈 수도 있습니다. 속마음을 말한다고 해서 상대를 공격하거나, 떠오르는 충동을 모두 행동으로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사랑은 완성된 나를 찾아낸 뒤에야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 관심이 곧 사랑입니다. 그래서 내 감정과 욕구를 알아차리고 이렇게 작은 진실부터 안전한 방식으로 말해 보는 과정 자체가 자기 사랑입니다. 누구에게 어디까지 말할지 스스로 고르고 그렇게 고른 결과를 책임지는 것도 여기에 들어갑니다. 직장처럼 가면이 필요한 곳에서는 가면을 쓰고 믿을 수 있는 사람 앞에서는 벗을 수 있을 때, 나는 가면에 갇히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내 감정과 욕구를 잃지 않고 나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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