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사랑을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왜 아이에게는 그 사랑이 평가로 느껴질까요?
부모는 학원비를 내고 필요한 물건을 사 주며 아이의 미래를 위해 애썼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자녀가 ‘엄마가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어?’라고 말하면, 사랑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억울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었다고 해서 부모의 사랑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말은 부모가 애써 해 준 것들 속에서 아이가 정말 필요로 하던 것은 느끼지 못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관심, 그리고 잘하지 못해도 여전히 사랑받는다는 안심입니다.
아이 성적이 좋을 때는 다정하던 부모가 점수가 낮을 때는 냉담해졌다면, 아이는 ‘나는 잘해야 사랑받는다’고 해석합니다. 부모의 다정함을 사랑이 아니라 성적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충분히 받았더라도, 실패했을 때 위로받거나 부모가 마음을 물어봐 준 경험이 없었다면, 아이에게는 사랑받았다기보다 관리받았다는 느낌이 남을 수 있습니다.
배우자나 아이의 필요는 어떻게 묻고, 어디까지 들어주어야 할까요?
사람은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기보다 내 기준으로 사랑을 주기 쉽습니다. 힘들 때 조용히 쉬고 싶은 배우자에게 계속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격려가 필요한 아이에게 물건만 사 주면, 주는 사람의 노력은 커도 상대는 사랑을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묻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SNS에 한 남편이 올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혼 직전까지 갔던 이 남편은 매일 아침 아내에게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해 주면 당신이 행복하겠어?’ 하고 물었습니다. 처음에 아내는 ‘아무리 해 줘도 나는 당신한테 행복을 못 느껴’ 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계속 묻자, 아내는 원하는 것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그것을 하나하나 조금씩 들어주자 아내도 남편도 행복해졌다고 합니다. 아이에게도 ‘지금 내가 어떻게 해 주면 도움이 되겠니?’ 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해 주는 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그 요구가 내 권리를 침해하거나 나 또는 상대의 건강과 안전을 해친다면 거절해야 합니다. 성숙한 사랑은 상대의 필요를 이해하고 들어주되, 나를 버리면서까지, 또는 상대에게 해가 되는 것까지 들어주지는 않는 것입니다.
잘하는 모습을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요?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자녀,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잘하는 모습을 보여 줄 때만 생기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마음이 잘못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아이의 잘하는 모습을 기뻐하고 배우자의 장점을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 장점이 사라졌을 때 존중과 돌봄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은 좋은 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망스러운 모습이 나타나도 그 사람의 가치 전체를 성적표처럼 깎아내리지 않는 태도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잘나고 멋진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그 모습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게도, 나에게 잘해 주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열등한 모습을 무조건 아름답게 여기거나 해로운 행동까지 받아 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사람을 모욕하지 않으면서도, 고칠 것은 고치고 잘못된 행동에는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시험을 망쳤다면 마음은 위로하면서 공부 계획은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감추고 싶은 내 모습을 대하는 방식은 아이를 대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이어질까요?
자신의 실수와 약함처럼 감추고 싶은 모습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자녀의 실패도 빨리 고치려 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낮은 점수를 보는 순간, 자신이 실수했을 때와 같은 불안과 수치심이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그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너를 위해서’라는 말로 아이를 몰아붙이게 됩니다. 실수한 자신을 대하던 방식 그대로 아이를 대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이렇게 몰아붙이지 않으려면 부모에게 먼저 자기 사랑이 필요합니다. 자기 사랑은 자신의 모든 행동이 옳다고 선언하는 일이 아닙니다. 실수한 자신을 모욕하는 대신 이렇게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못해도 돼. 그것쯤 실수해도 괜찮아. 그렇다고 죽지 않아.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가치 없는 것도 아니야.’ 그리고 책임지고 다시 해 보는 것입니다. 이 태도를 익힌 부모는 아이에게도 ‘이번 행동은 고쳐야 하지만 너라는 사람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양을 늘리기 전에, 먼저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준 것이 아이나 배우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사랑은 내 기준으로 던져 주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의 마음도 묻고 내 마음도 살피면서 나도 상대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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