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왜 조건보다 익숙한 관계 방식에 먼저 반응할까요?
직업도 안정적이고 성실하며 주변의 평판도 좋은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마음이 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갈등이 예상되는 사람인데도 이상하게 편하고 끌릴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은 머리로는 조건을 따지지만 마음은 어린 시절 몸에 익은 관계 방식에 먼저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나를 키운 사람이 나를 대하던 말투, 나와 가깝게 지내거나 거리를 두던 정도, 애정을 표현하던 방식은 되풀이되면서 마음에 하나의 틀로 새겨집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상대의 지금 모습만 보지 않고 그 사람의 말투나 거리감,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이 틀과 닮았는지를 먼저 봅니다. 따져 보고 판단하기도 전에 한순간에 느끼는 일입니다. 틀과 닮은 사람은 처음 보는데도 이미 아는 사람처럼 편안하고 우리는 그 편안함을 끌림으로 느낍니다.
반대로 틀과 닮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건이 좋고 남들이 다 좋다고 해도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말이 없고 무뚝뚝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여성은 말을 재미있게 잘해서 누구에게나 인기 있는 남자를 만나도 오히려 거북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활발하고 재미있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여성이라면 말이 없는 남자가 따분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익숙해서 편한 사람은 안전한 사람일까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무뚝뚝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술 문제나 폭력이 있던 집에서 늘 눈치를 보며 살았다면, 커서도 부모와 비슷하게 술 문제가 있거나 거칠게 구는 사람, 옆에서 늘 돌보고 달래 주어야 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끌릴 수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그 편안함은 상대가 나에게 안전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닙니다. 어릴 때 겪은 것과 닮아서 익숙할 뿐일 수 있습니다. 특히 눈치를 보며 자란 사람은 어릴 때부터 부모를 달래는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달래 주어야 하는 사람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압니다. 그래서 그 사람 곁에 내가 맡을 역할이 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관계는 늘 눈치를 보며 긴장해야 하는데도,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와서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반대로 긴장할 일이 없는 평온한 관계는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릴 때 눈에 익은 겉모습이 배우자 취향을 그대로 결정할까요?
어릴 때 몸에 익는 것은 말투나 거리감 같은 관계 방식만이 아닙니다. 나를 키운 사람의 겉모습도 눈에 익습니다.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남자아이가 커서, 몸빼바지 차림의 할머니처럼 세련되지 않은 차림의 여성을 좋아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본인은 ‘나는 수수한 여자가 좋아’라며 취향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은 어릴 때 눈에 익은 모습이라 편안해서 끌리는 것입니다. ‘수수한 여자가 좋다’는 말은 그 끌림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는 합리화에 가깝습니다. 세련되게 꾸미고 미니스커트를 입던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이 섹시한 여성에게 끌리는 것도 비슷합니다.
그렇다고 어릴 때 눈에 익은 겉모습 하나로 배우자가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기질과 문화, 지금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성적 끌림, 관계 경험이 함께 작용합니다. 과거가 영향을 준다는 말은 운명이 정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겉모습보다 어릴 때 집에서 몸에 익은 분위기가 지금 내 관계에서도 되풀이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늘 눈치를 보며 누군가를 달래야 했던 집의 분위기입니다. 누구를 만날 때 내가 긴장하는지, 어떤 사람 앞에서 그 사람을 돌보고 구해 주는 역할을 맡게 되는지, 거절당하거나 다툴 때 내가 어떻게 하는지를 살펴보면, 어릴 때의 관계를 되풀이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조건과 끌림 가운데 하나만 믿고 결정해도 될까요?
끌림 없이 조건만 보고 결혼하면 외로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좋은 직업이나 맞벌이처럼 바라던 조건이 다 채워져도 마음은 원하던 만큼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방황합니다. 그러다 흔들릴 만한 계기가 생기면 바람이 나기도 하고 결국 이혼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런 결혼은 오래 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강한 끌림만 믿으면 위험 신호를 그냥 넘길 수 있습니다. 상대가 나를 존중하지 않거나 책임을 지지 않아도, 그 사람 곁에서 내가 안전하지 않아도, 끌린다는 이유로 넘어가게 됩니다. 결혼처럼 오래 함께하는 관계에는 끌림도, 현실을 따져 보는 판단도 모두 필요합니다.
따라서 사람을 볼 때는 질문을 둘로 나누는 편이 좋습니다. 끌림을 살피는 질문은 ‘이 사람은 왜 익숙하고 편한가’입니다. 그 사람의 말투나 거리감,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어릴 때 겪은 것과 닮아서 편한 것인지 돌아보는 질문입니다. 현실을 살피는 질문은 ‘이 사람은 실제로 나를 존중하며 약속을 지키는가’입니다. 느낌이 아니라 상대가 실제로 하는 행동을 보고 답하는 질문입니다.
조건은 좋은데 마음이 가지 않는 사람도 이 두 질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어릴 때 새겨진 틀과 닮지 않아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는 이유를 이해하고 상대의 행동을 관찰하면 익숙한 관계를 반복하는 대신 나에게 좋은 관계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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