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가 치는 바다를 보며 내 분노를 알아차렸습니다

아버지에게 맞은 기억은 내 안에 무엇을 남겼을까요?

일곱 살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무슨 말이나 행동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는 무언가에 화가 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대뜸 내 뺨을 여러 차례 때렸습니다. 몇 대를 맞았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자기 감정도 책임지지 못하는 어른에게 내가 함부로 다뤄졌다는 감각은 남았습니다.

이런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함부로 대해질 때마다 화와 슬픔, 원망이 마음 깊은 곳에 쌓였지만, 나는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였던 나는 아버지의 행동을 멈출 수도 없었고, 그분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습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한 감정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분노와 무엇이든 부수고 싶은 충동으로 남았습니다.

달랠 방법을 몰랐던 분노를 나는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마주했을까요?

나는 그 분노를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청소년기에는 일탈하며 그 분노를 견뎌 냈습니다. 일탈한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맞은 아이가 반드시 일탈하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을 말하고 보호받을 통로가 없으면 분노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청년이 된 뒤에는, 폭풍우가 몰아치고 태풍이 불어 바다가 사납게 요동치는 날이면 바닷가를 찾아갔습니다. 그 분노를 마주하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거센 파도가 솟구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분노와 슬픔, 원망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내 바깥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폭풍우 치는 바다를 바라보는 일은 왜 내게 위안이 되었을까요?

파도를 본다고 과거의 상처가 치료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바다 앞에서는 가슴이 터질 것 같던 분노를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내 바깥에서 움직이는 파도를 보듯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폭풍우 속의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조금씩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나도 저렇게 화가 나 있었구나.’ 무언가를 삼켜 버리고,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고, 파괴해 버릴 것 같은 거대한 에너지가 내 안에서도 그 파도처럼 솟구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작아졌을 때, 나는 무엇을 내려놓게 되었을까요?

폭풍우 치는 바다 앞에 서 있으면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 왔지만, 거대하고 웅장한 자연의 움직임 앞에서는 그저 작은 점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그렇게 작은 존재라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일수록 마음에는 오히려 평온함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바다 앞에서 나는 이런 것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이 분노를 해결하는 길은 분노를 세상에 쏟아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붙잡고 있던 ‘나’를 조금씩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 길을 머리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폭풍우 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몸으로 배워 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나’를 내려놓던 그 바다 앞에서 나는 신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을 때, 그제야 그 자리에 신이 서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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