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이 되면 그것이 삶의 일순위가 됩니다. 도박 중독자에게는 도박을 하는 게 일순위입니다. 마약이나 술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마약은 돈이 많이 듭니다. 그 돈을 만들려고 거짓말도 많이 하고 훔치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마약을 파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마약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니까 파는 것이지요. 이렇게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집니다.
여기서 중독을 죄로 볼 것이냐 병으로 볼 것이냐는 물음이 먼저 올라옵니다. 두 가지를 함께 볼 수도 있겠지만 죄냐 병이냐를 떠나서 한 사람이 왜 중독이 되는지 그 마음을 그냥 한번 보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중독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중독은 종류가 많습니다. 정부에서 지정한 4대 중독이 알코올, 마약, 도박, 게임입니다. 성중독도 상당히 많고 운동 중독과 책 중독도 있습니다. 책을 너무 많이 보는 것이지요.
중독은 무엇을 회피하는 걸까요?
중독이 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현실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도망치는 거예요. 현실을 왜 도망치느냐 하면, 현실에 사는 게 괴롭고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부딪히기가 너무 힘드니까 어느 한 곳에 몰입하는 겁니다.
좋은 중독도 있을까요?
좋은 중독도 있지 않으냐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좋은 중독은 없습니다. 모든 중독은 끝에 가서 자기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운동 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무릎이 다 나가도 운동을 합니다. 책 중독은 좋은 것 같지만 책을 보느라 일상생활을 못 합니다.
‘재미있어서 해요’와 ‘그냥 해요’는 무엇이 다를까요?
무엇에 빠지든 처음에는 좋고 재미있고 편합니다. 게임으로 한번 보겠습니다. 어른들 입장에서 보면 애들이 다 게임 중독자인 것처럼 보입니다. 집에 자녀가 있으면 게임을 너무 많이 하네, 게임 중독이다, 이렇게 말하게 되지요.
심각한 게임 중독이냐, 아니면 중독은 안 됐고 게임이 좋아서 많이 하고 있느냐. 이 차이는 물어보면 대충 답이 나옵니다. 자녀에게든 청년에게든 “게임 왜 하니?” 하고 물어보면 됩니다. “재미있어서 해요.” 이러면 중독자가 아니에요. 근데 “그냥 해요.” 이러면 중독자로 볼 수 있어요.
게임 중독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게임이 재미있어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임을 하면 어느 정도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현실은 괴로운데 게임을 하고 있는 동안은 마음이 좀 편안해지니까요. 그래서 왜 하느냐고 물으면 “재미있어서 해요”가 아니라 “그냥 해요”라는 대답이 나오는 겁니다.
술을 먹고 맞으면 왜 아프지 않을까요?
술을 먹으면 우리 몸의 감각이 마비가 됩니다. 그래서 술 먹고 맞으면 아프지가 않아요. 감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입니다.
게임도 감각을 마비시킵니다. 게임을 하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 줄을 모릅니다. 그렇게 게임을 하다가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뉴스가 한 5년에 한 번씩 나옵니다. 몸에서 영양이 다 떨어져 나가면 신체가 배고픔을 알려줘야 되는데 게임에 빠져서 그 감각이 마비되어 버리니까 배고프다는 신호를 못 느끼는 거예요.
중독은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어떤 목적을 가질까요?
그래서 중독은 심리적으로 보면 자기 파괴성의 목적이 있고요. 신체적으로 보면 자기 감각을 마비시켜요. 그게 또 목적이에요.
몸에 통증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요?
우리는 몸에 고통이 있으면 무엇을 먹습니까. 진통제를 먹지요. 감기에 걸렸거나 어디가 아프면 진통제를 먹어서 그 통증을 가라앉힙니다.
그러면 마음에 고통이 있으면 어떻게 해요?
신앙을 가진 우리들은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한테 위안과 힘을 받지요.
그런데 가만히 현실을 직시해 보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립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 중에 중독자가 또 많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 중에 분노장애도 많습니다. 그게 다 마음에 고통이 있다는 현상들이거든요.
그러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왜 하나님한테 위로와 위안과 힘을 못 얻을까. 이제 고민이 되는 지점입니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될 부분이에요.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너를 사랑한다고 늘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 말이 안 믿어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속으로 ‘나는 바보 같아. 바보 같은 나를 하나님이 사랑할 일은 없지’ 하고 믿고 있으면, 하나님이 사랑한다는 말은 알아들어도 그 사랑은 나와 관계없다고 여기게 됩니다.
중독은 마음의 고통을 해결할 방법을 어디에서 찾을까요?
마음의 고통을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내놓고 위로를 받으면 중독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평안하면 진정시킬 무엇이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위로를 받는 게 안 되는 거예요. 마음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우니까,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을 고르게 됩니다. 그래서 기분이 꿀꿀하면 나가서 쇼핑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쇼핑 중독자가 되는 거죠.
가만히 보면 중독은 마음의 고통을 해결하는 구원의 방법을 바깥에서 찾는 행위입니다. 고통은 마음에 있는데 문제 해결은 쇼핑처럼 바깥에 있는 것에서 찾는 것이지요. 자식이 속을 썩이니까 “아우, 열받아” 하면서 술 한 잔 마시는 것도 그렇습니다. 열받고 속상한 것을 술로 달래는 것이지요. 이렇게 중독은 결국 자기를 위로하고 달래는 기능이 있습니다.
늘 긴장하며 사는 사람이 술이나 약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수면 마취에 쓰는 프로포폴이라는 약은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프로포폴을 맞으면 어떻게 될까요? 프로포폴에는 중독의 특성인 진통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약물들은 특히 몸을 느슨하게 만듭니다.
중독자가 될 사람들은 항상 긴장하고 있습니다. 어깨에 항상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속으로 나는 바보 같다고 믿고 있으면, 사람들이 나를 바보로 보면 어떡하지 싶어서 늘 긴장하게 되거든요. 늘 그러니까 자기가 긴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평상시에 맨날 그렇게 삽니다. 그러다 술이나 약이나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긴장이 풀어져요. “어, 편안해. 어, 괜찮네. 뭔가 나를 평안하게 하네.”
마음이 어렵고 힘들 때 술이나 약이나 어떤 행동으로 위안을 받기 시작하면, 그것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다 심해지면 중독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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