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은 좋아서, 즐거워서 하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마음이 어렵고 힘들 때 술이나 약으로 위안을 받기 시작하면, 그게 반복되고, 심해지면 중독자가 되는 거예요. 그럼 고려해 봐야 될 게 있어요. 마음의 고통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 걸까.
마음의 고통이 없는 사람도 중독자가 될 수 있을까요?
마음의 고통이 없는 사람이 중독자가 될 순 없어요. 중독은 그 목적이 자기를 진정시키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마음이 평안한 사람은 진정시킬 그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 거죠.
마음의 고통은 근원적으로 어디서 오나요?
제가 마음의 고통의 원인을 세밀하게 찾아봤더니, 그 근원적 원인은 자기가 자기를 비난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너는 쓰레기야.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너는 멍청한 놈. 바보 같은 놈. 자기가 자기를 이렇게 정의 내렸고, 자기의 정체성을 그렇게 정해 놓은 겁니다.
내가 나를 바보라고 여기면 기분이 어떨까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바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게 의식이 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의식 자체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의식이 되든 안 되든, 내가 나를 바보라고 여기면 기분이 어떨까요. 우울해요. 그리고 항상 긴장해요. 왜 긴장하냐면, 사람들이 나를 바보라고 여기면 어떡하지 싶은 거예요. 남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들 있죠. 다른 사람의 평판과 평가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사람들이요.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런 믿음, 이런 생각이 있어요. 너는 형편없는 놈. 넌 바보 같아. 누가 너를 좋아하겠니.
「넌 바보야」, 이 소리는 얼마나 자주 반복되나요?
제가 20여 년 동안 상담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면서 얻은 결론이 있어요. 나는 바보 같다는 생각이 한번 들었다고 해서, 그게 호주머니에 들어가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에요. 계속 반복됩니다. 계속 자기한테 이 메시지를 심어요. 스스로가요.
넌 바보야. 넌 바보야. 넌 바보야. 이러고 있어요. 그런데 이러고 있는지 본인이 인지를 못해. 바보 같으니까 이런 것도 못하고, 바보 같으니까 넌 이렇게 살 수밖에 없고, 바보 같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널 좋아하겠냐. 모든 인생의 시간 시간, 순간 순간마다 계속 이러고 있어요.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롭겠어요.
술 한잔 딱 마시면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런데요. 술 한잔 딱 마시잖아요. 마약을 한번 딱 넣었어. 그러면 우리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너 바보야, 이 멍청아. 이 소리가 안 들려요.
그 소리가 안 들리니까 어떻게 중독에 안 빠질 수 있겠어요. 일순간 자기를 구원시켜 주잖아요. 자기를 더 이상 바보라고 말하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거예요. 어떻게 그걸 안 선택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선택하는 거예요.
중독자는 즐거워서 술을 마시는 걸까요?
중독자가 술을 마시는 건 즐거워서가 아니에요. 살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살기 위해서. 중독자에게 술은, 사실은 자기가 너무 괴로우니까 이 괴로움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도피처가 돼버린 거죠.
하나님이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왜 안 믿어질까요?
크리스천 중에도 중독자가 있고 이런 심리적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도 교회는 늘 이런 메시지를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해.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어. 예수 그리스도가 너라는 한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거야.」 그 메시지대로라면 이렇게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내가 엄청 귀한 존재구나. 신의 아들이 나를 위해서 죽었다는 건, 내가 천하보다 귀하다는 메시지 아닌가요.
그런데 그게 안 믿어지는 거예요. 아무리 옆에서 외치고 알려줘도, 그게 복음인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왜냐. 자기가 자기에 대해 알고 있는 것, 나는 바보라는 그 믿음이 그 사람에게는 복음보다 더 진리예요. 마음속으로는 이런 거예요. 「하나님이 너를 사랑해, 이건 알겠어. 그런데 그 사랑은 나와 관계는 없어. 난 바보 같거든. 바보 같은 나를 하나님이 사랑할 일은 없지.」
그래서 누가 「하나님이 너를 사랑해」 하고 얘기해 주면, 「알고 있어요」 하고 말합니다. 이게 정말 알고 있는 게 아니에요. 말만 그렇게 하는 거예요. 교회에서는 다들 그 말이 진리라고, 옳다고 하잖아요. 그 말을 반박할 수 있나요. 반박하면 「바보 멍청이, 그것도 모르냐」 이런 소리를 들을 텐데요. 이 사람은 자기가 바보라고 믿기 때문에, 바보라는 게 드러나지 않게 숨겨야 돼요. 그러니까 「알아요」 하고 마는 겁니다. 그렇게 말해도 자기 마음은 안 바뀌어요. 자기는 바보 같아서 하나님이 자기 같은 사람을 사랑할 리 없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죠.
즉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거예요. 자기를 싫어하고 혐오해요. 자기를 싫어하고 혐오하기 때문에 심리적 장애가 생기기 시작해요. 심리적 장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중독이에요.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중독자가 될 수 없어요.
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건 자기중심적인 걸까요?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는 이야기에서 기독교인들은 한 번 걸립니다. 자기를 사랑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타인을 사랑해야지. 그래서 이 이야기가 신앙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성경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자기 사랑은 자기중심적 사고, 곧 자기만 생각하는 상태를 말해요. 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예요. 우리가 자기를 귀하게 여겨야 된다고 할 때 그것은 자기만 생각하라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이 존귀하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그 진실을 아는 거예요.
우리가 존귀하기 때문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려고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신 거예요.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신은 판단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