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장면을 되감으며 ‘그때 다른 말을 했어야 했다’고 반복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무엇이 잘못됐는지 살펴보고 다음에 어떻게 할지 정하면 후회는 배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자신을 욕하기만 하면 생각은 많아져도 선택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후회되는 일이 있을 때 무엇을 구분해야 할까요?
후회가 배움이 된다고 해서 모든 삶이 옳았고 후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잘못한 선택과 피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은 ‘배웠다’는 말로 끝나지 않고, 사과하고 책임질 몫이 남습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일과 배울 내용을 구체적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자기비난은 무엇을 알려주지 못할까요?
‘내가 멍청해서 그랬다’는 문장은 그 일의 원인을 다 설명해 주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그때 어떤 위험 신호를 놓쳤는지, 무엇이 두려워 거절하지 못했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확인할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내가 멍청해서’처럼 나라는 사람 전체를 탓하면 과거의 나를 벌줄 수는 있어도 미래의 행동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계약서를 확인하지 않았다’, ‘불편했지만 관계가 깨질까 봐 말하지 않았다’처럼 행동과 이유를 적어야 무엇을 배웠는지 보입니다.
배운 것이 있는데도 왜 같은 선택을 되풀이할까요?
후회하는 일에서도 우리는 분명히 무언가를 배웠습니다. 배운 게 없는 것 같아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게 느껴질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내 책장에 금고가 하나 있고, 그 안에 1억 원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금고가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러면 돈은 분명히 있는데도 나는 1억 원이 없는 사람처럼 삽니다.
배움도 그렇습니다. 배운 것이 있어도 의식하지 못하면 ‘거기서 배운 건 하나도 없어’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 기억에는 잘못했다는 수치심만 남습니다. 그래서 떠올릴 때마다 ‘멍청하게 왜 그랬냐’, ‘바보같이 왜 또 그런 선택을 했냐’ 하며 자신을 질책만 하게 됩니다.
의식하지 못한 배움은 지금 내 삶에 적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상황이 오면 같은 선택을 되풀이합니다.
반대로 ‘어, 1억 원이 있네’ 하고 알게 되면 그 돈을 꺼내 씁니다. 배움도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꺼내 쓸 수 있습니다.
배운 것을 의식하려면 무엇을 배웠는지 말로 분명히 적어 봐야 합니다. 과거에서 얻은 배움을 ‘큰돈은 당일에 결정하지 않는다’, ‘모욕하는 사람에게 이유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처럼 행동 규칙으로 바꿔 두어야 실제 상황에서 꺼내 쓸 수 있습니다.
내가 피해를 준 일과 입은 일에서 책임과 배움은 어떻게 다를까요?
‘덕분에 배웠다’는 말로 상대에게 준 피해를 덮어서는 안 됩니다. 사과하고 배상할 일이 있다면 먼저 책임져야 합니다. 그다음 같은 잘못을 막기 위한 기준을 세워야 배움이 말에 그치지 않습니다.
반대로 내가 피해를 입은 일까지 ‘내가 배울 일이 있어서 생겼다’고 해석할 필요도 없습니다. 타인의 잘못은 타인의 책임입니다. 내가 가져갈 배움은 앞으로 위험 신호를 알아보고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입니다.
후회가 시작되면 무엇을 적어 보면 될까요?
과거 장면이 떠오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 무엇을 선택했는지, 어떤 위험 신호를 놓쳤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를 각각 한 문장으로 적어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비슷한 제안이 오면 하루 뒤에 답한다’처럼 실행할 수 있는 문장을 남깁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과거를 사용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습니다. 같은 장면을 떠올리며 자신을 벌주기만 하면 후회가 되풀이되고, 그 장면에서 다음 행동 기준을 꺼내 쓰면 후회는 배움이 됩니다. 후회를 끝내는 것은 잊는 일이 아니라 다음 선택을 달리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