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은 그냥 보고 넘기는 장면인데 나만 유난히 오래 울 때가 있습니다. 화면 속 이별과 재회, 무시당하는 아이의 모습이 내가 겪은 일과 닮아 있으면, 그 장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만큼 큰 슬픔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며 자주 우는 것은 모두 내 경험과 닮아서일까요?
드라마를 보며 자주 우는 사람은 모두 해결되지 않은 상처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공감이 크거나 피곤한 날에도 눈물이 날 수 있습니다. 다만 늘 비슷한 장면에서만 계속 눈물이 난다면, 그 장면과 닮은 아픈 일이 내 과거에 있었는지 살펴볼 만합니다.
왜 내 일에는 못 울고 남의 이야기에는 울 수 있을까요?
내 일을 떠올리면 너무 아프거나 부끄러워서 나도 모르게 감정을 막게 됩니다. 드라마 속 인물의 일은 내 일이 아니라서 그만큼 덜 아프고 덜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서는 울 수 있습니다. 내 일로는 울지 못한 슬픔이 화면 속 인물의 사정에 얹혀 나오는 것입니다. 드라마를 보고 우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안에서 내 삶을 보고 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일에서 생긴 감정이 남의 이야기로 옮겨 가서 나오는 것을 정신분석에서는 ‘자리를 옮긴다’는 뜻으로 전치라고 부릅니다. 자리를 옮겨 나온 눈물이라고 해서 가짜인 것은 아닙니다. 현재 장면에 대한 공감과 내 삶의 슬픔이 함께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애도는 무엇을 받아들이는 과정인가요?
드라마 앞에서 유난히 오래 우는 것은 내 삶에서 겪은 아픈 일을 아직 충분히 슬퍼하지 못해 그 슬픔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잃었을 때 잃었다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두고 슬피 우는 일을 애도라고 합니다. 애도를 다 해냈다면 그 슬픔을 드라마에 옮겨 실을 필요가 없습니다. 애도는 누가 세상을 떠났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살아 있어도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했다면, 그것도 상실입니다. 그러니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것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받지 못한 관심을 성인이 된 뒤에도 부모에게 계속 요구하게 됩니다. 부모가 한 번쯤은 달라져 내 아픔을 알아주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한 여성이 엄마에게 “나 팔 아파”라고 했다가 “병원 가”라는 말만 듣고 기분이 상해 엄마와 티격태격했습니다. 팔이 아프다는 말은 사실 ‘나한테 관심 좀 가져 줘’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엄마는 늘 자기 생각뿐이라 딸에게 관심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딸도 엄마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은 여전히 엄마의 관심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삐진 것입니다. 이렇게 기대가 꺾일 때마다 또 좌절하고 상처받게 됩니다.
애도는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을 포기하라고 꾸짖는 일이 아닙니다. 내 부모가 내가 원한 방식으로 돌봐 주지 못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사실을 두고 충분히 슬퍼하는 과정입니다. ‘내가 원할 때, 내가 아플 때 우리 부모는 도대체 어디 있었나’ 하고 슬피 울어야 합니다.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면 부모가 달라지기를 계속 기다리며 매달리게 됩니다. 매달리면 기대한 관심을 받지 못할 때마다 또 상처받고 세상에 대한 분노, ‘도대체 내 부모는 나를 보살피지 않았다’ 하는 분노가 계속 올라옵니다. 현실을 인정해야 부모에게만 매달리지 않고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도 필요한 돌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받지 못한 것을 왜 상실이라고 하나요?
사별처럼 있던 사람을 잃는 일은 분명한 상실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받지 못한 것도 상실이 됩니다. 엄마 없이 태어나 자란 아이는 엄마를 잃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없다는 그 자체가 아이에게 상처가 되고 상실이 됩니다. 부모 곁에서 자랐어도 안정적인 돌봄과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면 마찬가지입니다. 사랑받고 싶은데 채워지지 않은 것, 이것도 슬퍼해야 할 상실입니다.
눈물을 멈추기보다 무엇을 해 볼 수 있을까요?
울고 난 뒤 장면과 감정을 짧게 적어볼 수 있습니다. ‘아픈 딸을 안아주는 장면에서 울었다. 나도 아플 때 걱정받고 싶었다’처럼 화면 속 일과 내가 바랐던 것을 이어 보는 것입니다.
슬피 울어야 한다고 해서 억지로 오래 울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슬픔을 느끼면서도 일상은 이어 갈 수 있습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생활이 어렵거나 절망과 자해 생각이 함께 든다면 혼자 견디지 말고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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