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한테 부탁 한마디 하려고 카톡 문장을 썼다 지웠다 해본 적 있으시죠. “이거 말해도 되나”,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하지” 하다가 결국 안 보낸 말들 말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조심조심 꺼낸 부탁일수록 더 잘 거절당합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좋은 부모란 뭘까”라는 질문까지 가보려고 해요.
조심스럽게 부탁할수록 왜 더 잘 거절당할까요?
먼저 부탁하는 사람의 마음부터 볼게요. 꾸미지 않은 진짜 내 모습을 참자기라고 해요. 참자기는 내가 받아들여져 본 경험 위에서 만들어져요. 그래서 참자기를 가진 사람은 뭔가를 말할 때 “당연히 들어주겠지” 하는 가벼운 기분으로 말해요. 불안이 아니라 편안함이죠.
신기하게도, 그 편안한 마음으로 꺼낸 말은 대개 받아들여져요. “당연히 들어주겠지” 하는 내 기대가 상대에게 전해져서, 상대도 쉽게 받아주게 되거든요.
반대로 “이거 받아줄까…?” 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말하면 거절당할 때가 늘어나요.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내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상대한테도 전해져서, 상대도 선뜻 받아주기 어려워지거든요.
물론 세상에는 들어줄 수 있는 부탁도 있고 도저히 안 되는 부탁도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요구는 누구도 못 들어주죠.
재밌는 건, 참자기를 가진 사람은 현실감도 있다는 거예요. 무엇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고 무엇은 안 되는 부탁인지를 안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상대가 들어줄 만한 걸 부탁해요. 지나치게 부탁하는 건 상대의 선을 넘어 들어가는 일(침범)이라서, 그렇게는 하지 않고요. 들어줄 만한 걸 부탁하니까, 부탁한 사람도 들어준 사람도 둘 다 편해요.
부모가 너무 완벽하면 아이는 뭘 못 하게 될까요?
이제 부모 이야기로 가볼게요. 참자기는 어릴 때 부모 곁에서 만들어지니까요. 어떤 아이도 부딪히거나 실망할 일 하나 없이 100퍼센트 보호받지는 못해요.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얘기가 있어요. 100퍼센트 보호해줘도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아이가 못 자라거든요.
그래서 위니캇(아이와 엄마 사이를 평생 들여다본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은 이런 말을 해요. 부모는 실수를 해야 한다고요. 일부러 실수하라는 게 아니라, 부모의 실수가 아이한테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아이는 부모의 실수에 부딪히면서 자기 안에 있는 힘(공격성)을 꺼내거든요.
여기서 말하는 공격성은 폭력이 아니라, “싫어!”, “나는 이렇게 할래!” 하고 자기를 내보이는 힘에 가까워요.
부모가 너무 완벽하고 너무 착하면, 아이는 그 힘을 꺼낼 수가 없어요. 부딪힐 실수가 없으니까요.
‘충분히 좋은 엄마’는 완벽한 엄마와 무엇이 다를까요?
위니캇이 남긴 유명한 말이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예요.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그냥 이만하면 됐다 싶은 엄마요. 실수도 하고, 어떤 날은 잘 못 받아주기도 하고, 그래도 괜찮다는 뜻이에요.
좋은 부모는 완벽하게 준비해서 완벽하게 딱 챙겨주는 부모가 아니에요. 오히려 완벽하게 해주려는 그 마음이 아이한테서 부딪히고, 실망하고, 화낼 기회를 미리 뺏어가요.
완벽하려는 그 마음은 성격일까요, 상처일까요?
부모가 되면 보통 자기가 받은 방식대로 아이를 키우게 돼요. 배운 적 없는 걸 하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렇다면 아이를 완벽하게 챙기려는 마음은 타고난 성격일까요?
자꾸 완벽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것을 강박성이라고 해요. 이건 성격이 아니라 상처예요. 어릴 때 나를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펼치며 살지 못해서 생긴 거예요.
그러니까 완벽주의는 “고쳐야 할 나쁜 버릇”이라기보다, “내가 어디서 눌렸길래 이렇게 됐지?” 하고 먼저 들여다봐야 할 상처예요.
아이를 몰아붙이는 말, 사실 누구한테 하던 말일까요?
내 자식은 남이 아니라 나와 하나처럼 느껴져요. 이것을 동일시라고 해요.
그래서 내가 나의 부족한 점을 얼마나 봐줄 수 있느냐, 딱 그만큼 아이의 부족한 점도 봐줄 수 있어요.
내 부족한 점을 봐주지 못할수록 자꾸 아이를 잡게 돼요. “이것도 못 하냐”는 말이 자꾸 나오죠. 그런데 그렇게 몰아붙이는 목소리, 사실은 원래 내 안에서 나 자신한테 하던 말인 경우가 많아요. 내가 뭘 잘 못할 때마다 속으로 “이것도 못 하냐” 하던 그 말이요. 아이한테 새로 지어낸 말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내가 나한테 해오던 말이 밖으로 툭 나온 거예요.
아이의 부족한 점까지 품을 수 있느냐는 결국 한 가지에 달려 있어요.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나를 봐주고, 내 부족한 점도 그냥 그러려니 두는 것.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여기서 시작돼요.
좋은 부모가 되려고 애쓸수록, 아이 마음은 왜 자라지 못할까요?
처음에 이야기한 편안한 부탁, “당연히 들어주겠지” 하고 가볍게 꺼내는 말은 참자기에서 나와요. 그리고 참자기는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실수도 하는 ‘충분히 좋은’ 부모 곁에서 만들어져요. 부모가 실수를 해줘야 아이가 “싫어!”, “나는 이렇게 할래!” 하고 자기를 내보일 수 있거든요. 그러니 완벽하게 다 챙겨주려는 마음은 아이에게 뭘 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부딪히고 실망하고 화낼 기회를 미리 빼앗는 일이 돼요.
그리고 완벽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그 습성은, 내가 어릴 때 나를 있는 그대로 펼치며 살지 못해서 생긴 상처예요.
“이것도 못 하냐”가 아이에게 나갈 때, 그 말은 아이한테 새로 지어낸 말이 아니에요. 내가 나한테 오래 해오던 말이 밖으로 나온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