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랑이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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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챙기면 왜 이기적인 것 같고, 자기 사랑은 왜 인위적으로 느껴질까요?

쉬고 싶다고 말하거나 내 몫을 먼저 챙기면 마음 한쪽이 불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왜 너만 생각하니’, ‘동생부터 챙겨야지’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면 자기 욕구를 드러내는 행동을 나쁜 것으로 배웠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내 욕구를 챙기는 것이 나쁘다고 배운 사람은 자기 사랑이라는 말에 거부감부터 느낍니다. 속으로는 여전히 ‘나를 챙기면 나쁘다’고 믿는데 나를 사랑하라고 하니, 마음에서 우러나는 일이 아니라 인위적인 일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사랑이라고 하면 내 욕구는 계속 무시한 채 거울을 보며 억지로 자신을 칭찬하는 모습부터 떠오릅니다. 자기 사랑이 정말 그런 것이라면 공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사랑은 나를 향한 따뜻한 마음이 들지 않는데도 그런 마음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피곤한지 아픈지 있는 그대로 살피고 쉬거나 부탁을 거절하는 것처럼 나를 지키고 돌보는 행동을 하는 일입니다.

나를 돌보는 일과 이기적인 행동은 어디에서 갈릴까요?

피곤해서 부탁을 거절하고 휴식하는 것은 나를 돌보는 일입니다. 내 시간과 힘을 나를 위해 쓸 뿐, 상대의 것을 빼앗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내가 편하려고 상대의 시간과 돈을 빼앗고 상대가 싫다고 해도 무시하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둘 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대의 권리를 존중하느냐가 다릅니다. 상대가 자기 시간과 돈을 어떻게 쓸지, 싫으면 거절할지를 스스로 정할 권리입니다.

그러니 나를 돌보는 일과 이기적인 행동을 가르는 것은 내가 나를 먼저 생각했느냐가 아닙니다. 어릴 때 배운 ‘나부터 생각하면 나쁜 사람’이라는 믿음을 ‘내 필요를 챙기면서 상대의 권리도 존중한다’는 기준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를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내 필요를 채우는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자기 욕구를 충분히 경험하는 일은 왜 중요할까요?

나를 챙기는 일이 이렇게 불편해진 까닭은 어린 시절에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아직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어른의 기준을 잘 모릅니다. 먼저 자기 배고픔과 피곤함을 느끼고 돌봐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나이에 맞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요청하면서 아이는 자기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감각(자기감)을 키웁니다. 이 시기에 ‘왜 너만 생각하니’ 하며 어른처럼 남을 먼저 배려하라고 지나치게 요구하면, 아이는 욕구 자체를 부끄러워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릴 때 자기 욕구를 충분히 경험해 본 사람은 자기 몫이 이미 채워져 있어서 어른이 되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생깁니다.

그렇다고 아이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권리가 있고 현실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무언가를 원한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가질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도와야 합니다. 원하는 마음은 그대로 받아 주되, 행동은 조절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따뜻한 느낌이 들지 않아도, 어떤 선택을 반복하는 것이 자기 사랑일까요?

제때 먹고 자는 일, 몸이 아프면 치료받는 일, 모욕하는 관계에서 거리를 두는 일, 감당할 수 없는 부탁을 거절하는 일이 자기 사랑입니다. 처음에는 따뜻한 느낌보다 죄책감과 어색함이 먼저 올 수 있습니다. 죄책감이 드는 것은 어릴 때 배운 ‘나부터 생각하면 나쁜 사람’이라는 믿음이 나를 챙기려는 바로 그 순간에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어색하다고 잘못된 행동은 아닙니다. 나를 챙기는 일을 오랫동안 해 보지 않아서 낯선 것입니다. 내 필요를 챙기면서 상대의 권리도 존중하는 선택을 반복하면, 나를 돌보는 일이 자리를 잡습니다. 거울 앞에서 하는 인위적인 칭찬이 아니라, 내 필요를 내가 날마다 책임지고 채우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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